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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98)] 서정시와 함께하는 송년회…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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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98)] 서정시와 함께하는 송년회…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송년회 분위기로 사방이 떠들썩하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 길 잃은 노랫가락, 일회용 웃음을 듣노라면 지나온 한 해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이맘때만 되면 사람들은 걸음이 바빠지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항상 돌아오는 것은 허무감과 온기 없는 말들뿐이다.

이럴 때 좀 차분히 한 해를 쓰다듬어보면 어떨까? 술과 노래, 소란과 무질서를 잠시 묶어놓고 책 한 권을 들고서. 이때는 재미있는 소설이나 심오한 사상서보다 은은한 여백을 지닌 시집이 좋을 듯하다. 시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시가 우리의 정서와 생활에 미치는 힘은 크다. 서정시 한 편을 읽고 음미하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는 시가 지닌 치유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 시인은 면면히 이어온 우리 서정시의 전통을 계승해 신서정의 공간을 펼쳐 보인다. 복잡하고 난해하면서도 건조한 시가 많은 이 시대에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시를 써서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특히 서정적 권위를 내려놓고 겸손하게 우리 곁에 다가오는 소박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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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자연과의 깊은 교감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넌지시 제안한다. 그 중에서도 '가재미'라는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성찰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사랑은 넘치지만 껍데기만 남았고, 표현은 현란하지만 영혼을 찾기 힘든 이 시대 사람들에게 사랑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사랑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참된 사랑은 아마도 말을 넘어 선 곳에 있을 것이다. 소유와 욕망을 버리고 수평으로 다가가 공감의 장을 나눠가질 때 비로소 사랑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이 겸손과 수평의 시 정신은 과시하고 소유하려는 삶의 방식에 쉼표를 찍게 한다. 비우고 내릴수록 더 무겁고 높아지는 사랑의 힘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어 여러 번 반복해 읽어도 감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시린 바람 한 줄기가 텅 빈 가슴에 머문다. 남은 2015년에는 서정시 한 권을 읽고 한 편의 시를 음미하며 한 해를 떠나보내면 어떨까?
김종두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대구회장(심인고등학교 수석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