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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43)]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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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43)]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국 문화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얼마 전까지 세계의 변방에 서성이던 한국 문화가 이제는 세계 속에 당당히 자리 잡았다. 1990년대 ‘난타’의 성공에 이어 2000년대에 와서 한류 드라마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K팝이 세계 속에 한국의 이미지를 깊이 각인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 문화의 숨겨진 저력이 발현된 결과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낯선 문화에 대해서는 강한 동경과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우리 곁에 있는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규모와 화려함에는 쉽게 끌리지만 소박함 속에 스며있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읽어내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 주위에는 부당하게 대접받거나 외면당하고 있는 우리 문화가 많다.

이런 가운데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답사 문화를 자리잡게 했고 우리 문화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문학 서적으로는 최초로 300만권 이상 팔린 이 책은 국내편만 8권이 출간되었다. 이런 사실은 이 책에 대한 대중의 요구와 공감을 잘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2권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가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1권은 작가가 미지의 독자를 향해 쓴 것인 반면 2권은 자신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1권이 애교와 하소연을 통해 강렬하게 호소한 데 비해 2권은 차분한 어조로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전해주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래서 2권은 필자와 같이 문화유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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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리산 동남쪽인 경남 지방에서 시작해 강원, 경북을 쓰다듬고 전북 부안·변산에서 마무리된다. 14개의 꼭지 중에서 6, 7, 8꼭지인 ‘토함산 석불사’ 부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소네 통감의 도둑질을 막지 못한 것이 아렸는데, 테라우찌 총독의 보수공사로 인해 완전히 해체되고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는 대목을 읽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오욕의 역사로 인해 석불사 석굴은 끊임없이 습기, 이끼와 싸우게 되었다.

석굴의 신비를 밝히려는 노력은 눈물겹고 아름다웠다. 특히 고유섭 선생의 석굴 연구에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그의 사랑과 존경이 흠뻑 묻어났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잠자고 있든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깨어나게 된다. 이 석굴 하나만 있어도 우리 문화는 세계 속에 당당히 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본인 요네다의 석굴 측량은 석굴의 신비를 밝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 측량으로 요네다는 석굴의 조영이 12자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사각형과 그 대각선의 길이인 루트2의 응용, 정삼각형 높이의 응용, 원에 내접하는 육각형과 팔각형의 비례구성으로 이루어졌음을 풀어내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많은 의문을 남겼고 김용운 교수의 연구와 남천우 박사의 분석도 석굴암의 신비를 다 밝혀내지 못했다. 이렇듯 석굴의 신비와 미학은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또 다시 보수공사가 시작되었다. 뒤이어 1960년대에 본격적인 보수 작업이 시작되지만, 체계적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추진하다보니 더 큰 문제를 유발하였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만 3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탄생한 석굴암은 수(水)굴암, 암(暗)굴암, 전(電)굴암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여기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한다. “무생물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 말은 문화유산 보존 정책에 대한 강한 화두이다.

우리나라는 온 국토가 박물관이다. 이 문화유산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 선조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에 단순한 자연물과는 다르다. 여기에 사용된 돌이나 나무는 시공간을 초월해 살아 숨 쉬고 있고, 그 생명력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 생명력을 공유할 때 그것은 비로소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피어난다.
김종두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대구회장(심인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