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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자신의 존재와 사랑에 관한 사유와 성찰…김선주 안무의 '우리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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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자신의 존재와 사랑에 관한 사유와 성찰…김선주 안무의 '우리집은 어디인가'

최근 대전 예술가의집(누리홀)에서 공연된 김선주 안무의 '우리집은 어디인가'는 '위로' '여우와 두루미' '소금꽃 이야기'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016 대전문화재단 차세대 artStar 지원사업의 대상자로 선정된 현대무용가 김선주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현대무용의 난해함을 우회하여 현대무용의 핵심적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제목을 차용한 '우리집은 어디인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자신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위로', 3포 세대를 동인(動因)으로 한 '여우와 두루미', 원초적 삶에 걸린 노동의 가치와 자연이 일깨워 주는 삶의 지혜를 표현한 '소금꽃 이야기'는 시적 상상력, 동화적 구성, 판타지적 리얼리즘이 동원된 작품들이었다.
'위로'는 도종환의 시 '가구'의 의미가 내려앉는다. 베토벤 첼로소나타 3번과 브람스의 첼로소나타 1번을 사용하여 피아노의 가벼움과 첼로의 무거운 느낌을 대비, 아내와 남편을 상징하며 춤으로 풀어낸다. 조명은 스퀘어로 공간을 나누고 집의 구조, 신발장, 거실, 화장실, 침실, 서재 등을 표현한다. 무용수가 버튼을 누르면 집안의 불이 켜지도록 디자인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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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위로'


김선주와 김용흠의 듀엣, 영상은 세면대, 세면대에 물 흐르는 모습, TV화면, 허상의 인물이 나타났다 없어지며 디테일하게 상황을 표현한다. 춤 중간의 시계소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랑이 변함을 표현한다. 너는 나의 위로, 나는 너의 위로가 되는 존재인데 지금은 그 존재의 이유를 잊은 듯하다. 모바일처럼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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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위로'

바깥의 시름이 집안까지 밀려와 삐걱 거리는 소리로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앞에 있는 서로의 존재를 두고 다른 곳에서 쉽게 위로 받으려 허상의 꿈만 쫓아간다. 권태기에 찾아오는 문명의 이기는 살 가운 대화와 미숙한 연애감이 만들어내던 아릿한 추억들을 지워나가며 영혼을 잠식한다. 위로받고 싶은 감정이 진해질수록 춤은 격렬해지고 공감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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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위로'


'여우와 두루미'는 모티브이며 오브제가 된 이솝우화의 교훈,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에 맞춰 동작을 구사함으로써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생기는 여우와 두루미의 에피소드가 묘사된다. 여우의 생일에 초대된 두루미와 두루미가 초대한 여우는 접시와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다.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 세태풍자는 잔재미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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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여우와 두루미'

조명은 낭만 분위기의 전통을 구사하며 전반적으로 밝다. 작은 키 이지만 당찬 고루피나, 싱거운 키다리 김준혁의 식탁 2인무는 전개형식과 기교적 춤으로 그 연기의 코믹 향기가 공연장 전체에 가득 퍼져 있었다. 낭만적 공간에서 연기해낸 배려 없는 쓸쓸한 현대적 풍경과는 달리 이 작품을 맞이한 관객들은 쏠쏠한 재미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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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여우와 두루미'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은 여우와 두루미의 다툼을 귀엽게 표현한다. 안무가 김선주는 속이고 골탕 먹이고 폭로하고 되돌려주고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만 남은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과 동형의 세태를 풍자한다. 김선주가 꿈꾸는 건강한 삶은 기회주의적 탈취가 아닌 우정 있는 따뜻한 동화적 공간이다. 그녀가 보고 싶은 성숙한 사회가 만들 푸른 공간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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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여우와 두루미'

자연음(音)을 이용한 마무리, 나무 고보를 사용하여 여우와 두루미의 숲속이미지를 묘사한다. 새와 두루미로 환치된 공간에서의 초록, 새로운 사회는 기존 질서 중의 일부분에서도 가능하다. 안무가의 상상력, 부동의 중심에서 찾아낸 의지적 공간은 우리의 마음속에 싹트고 있었다. 위엄의 근원을 현실에서 찾은 이 작품은 김선주의 춤 배합 능력과 구성의 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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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여우와 두루미'

'소금꽃 이야기'는, 모태 공간인 바다를 배경으로 그 시적 이미지를 춤으로 형상화 시킨 작품이다. 긴 여운을 남기며 이어지는 파도소리를 사용하여 바다를 설정하고 무대 바닥에 가득 퍼진 영상은 낭만적 사실감을 드높인다. 짜면서도 달짝지근한 삶이라는 바다에서, 내려 쬐는 햇볕 아래 물레질하고 고무래로 부지런히 소금을 긁어모으는 염부의 모습이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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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소금꽃'

이소연의 시 '소금꽃 이야기'는 염전에 말없이 피는 꽃을 보거든/사랑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햇볕과 바람으로만 피는 꽃/오래두어도 변하지 않는/침묵의 무게를 달아보라 (중략) 바닷물 부드러운 출렁임 속에/이렇게 뼈있는 말이 들어있을 줄이야/끝까지 바다이기를 고집하지 않고/때를 알아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물의 환희를 보라(후략)가 떨어지는 꽃처럼 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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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소금꽃'

김선주의 선곡, 에지오 보쏘(Ezio Bosso)작곡의 고전적 미니멀리즘으로 가득한 '천둥과 번개, Thunders and Lightnings'와 에지오 보쏘의 피아노와 지아꼬모의 바이올린으로 편제된 '구름, 바람을 탄 내 마음, Cloud, The mind on the wind'는 노동자들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에지오의 기상 요소에 적합한 음악 '천둥과 번개'로 염전은 구체화되고, 시청각을 흔든다.

음악은 시간적 배경을 달리하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염전에서 일하는 시간을 표현하고, '밀려오는 파도'와 '소금이 점차 퍼져가는' 영상은 작품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자신의 몸짓을 태워 작은 보석으로 변하는 소금들, 소금이 담겨지는 마대자루, 남성 1인, 여성 2인의 3인무(정진아, 황지영, 강윤찬)는 꽃으로 피어나는 소금을 두고 흐느끼며 환호한다. 첼로가 잠재우는 바다, 파도소리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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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안무의 '소금꽃'
김선주, 충남대학교 무용학과(현대무용)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 출신의 '메타댄스 프로젝트' 핵심 단원이다. 23회 전국무용제 금상수상작 '그림자 도시'에 출연하였고, 해마다 안무작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보령 삽시도의 아름다운 눈물과 낭만을 몸소 체험하며 성장한 춤꾼이다. 안팎으로 성숙을 채워간 그녀의 안무작 세 편은 한 해를 마무리한 소중한 결실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