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56)]

아슐리안문화는 유럽 일대에서 발견되는 주먹도끼문화를 말한다. 이후 대대적인 지표조사와 함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전곡리 유적은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 발견은 당시 고고학 학계를 완전히 뒤엎는 대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형 뗀석기(흔히 양면핵석기라 부른다)가 발견되지 않아 대표적으로 모비우스(Movius) 같은 학자들의 '구석기 문화 이원론'이 주장되고 있었다.
이는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상의 선으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과 발견되지 않는 지역을 나누어, 인류의 이동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는 이론으로 한동안은 인도 동부에서부터 이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인류의 동아시아 진출이 (이 석기를 이미 가지고 들어간) 유럽보다 늦게 이뤄지지 않았나 추정했다. 그런데 전기 구석기의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아슐리안 석기 발견으로 정설로 인정받았던 모비우스 학설이 한순간에 부정되어 버린 것.
이로써 일본은 세계적으로 개망신 당하는 것은 물론, 일본의 고대 석기 시대 연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슐리안형 석기보다 이전의 원시적인 석기를 올도완(Oldowan) 석기라고 부르는데 아프리카에서 260만년 전부터 발견된다. 그런데 아프리카로 부터 호모 에렉투스가 약 190만년 전쯤 아프리카를 나와서 아시아 쪽으로 진출했는데 이때 조악한 올도완 석기기술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 이후 160만년 전쯤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고인류가 보다 발전된 방식의 석기를 만드는데 이를 아슐리안형 석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국 및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 유적에서는 당연히 올도완 석기만이 발견된다. 위에 나온 모비우스 라인은 이런 증거를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오랫동안 고인류학자들에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슐리안 석기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석기와 상당히 닮은 손도끼가 발견되어 학계의 논란이 된 것이다.
이 유적이 30만년 전의 것이라면 새로운 호모 에렉투스가 아슐리안 석기 기술을 가지고 아프리카로부터 아시아의 끝까지 왔다는 얘기이거나, 최소한 아슐리안 기술이 그 먼 거리의 고인류 사이에 전파되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지나간 자리에 다른 아슐리안석기 유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전곡리 유적 발견 당시에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그런 증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설이 나왔다. 만약 이 유적이 4만년 전의 것이라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유골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의 지질학적 상황으로만 연대를 추정해야 하기 때문에 둘 중 어떤 것이 맞다고 정확하게 말하기 힘든 점이 있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