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그런데 소매점 이름이 독특하다. '품절남(品切男)'은 이미 결혼을 했거나 결혼 예정인 사람으로 더 이상 이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신조어다. 그런데 이 소매점의 브랜드도 품절남이다. 그날 들어온 제품은 당일에 '모두 완판(完販)하는 남자들'이란 뜻이다.
품절남의 제품은 중간도매상을 거치지 않아 저렴에게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광수 대표가 가락동 시장에서 매일 꼭두 새벽에 채소와 과일을 경매를 통해 직접 구입한다. 품절남의 판매직원만 4명이다. 품절남을 오픈하기 전에 이 대표는 6개월 이상 매일 가락동 시장과 채소 및 과일 소매상을 돌며 시장조사를 마쳤고, 직원들도 미리 뽑아 다른 소매점에서 일을 익히도록 했다. 재미난 사실은 4명의 직원은 일정기간이 지나 품절남이 자리를 잡으면 2, 3호점 등 다른 지점을 열 계획이 있는 직원들이다. 모두 사장 후보들인 셈이다.
이 대표는 오전에는 직원들과 함께 판매를 돕다가 오후에는 대형식당을 돌며 납품영업을 한다. 그리고 숍을 닫기 전에 기존 거래처에 제품을 납품하러 부지런히 움직인다. 숍은 제품이 거의 판매되면 그때서야 문을 닫기 때문에 폐점시간이 일정치가 않다. 직원들을 먼저 퇴근시키고 홀로 숍을 지키는 것도 다반사다.
이미지 확대보기사실 이광수 대표는 '도시농부(都市農夫)'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인근에서 가업인 농사를 짓다가 채소와 과일 판매상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농삿꾼이 직업이 아니었다. 3녀1남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대학 1학년때 해병대를 자원해 백령도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물리치료학을 전공하고 자격증까지 딴 뒤 병원에서 5년간 근무했다. 그러다가 부친의 권유로 농사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농사일이 그리 녹록치가 않았다. 고추, 깨, 양파, 마늘 등 10가지 이상의 농산품 생산을 위해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평소 땀이 많은 그는 푹푹찌는 한여름에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 50도가 훌쩍 넘어가는 바람에 쉴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걷어내는 일은 친구를 둥원해 함께 했다. 고추 등 수확철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알바로 썼다. 수확할 때 최대 고비는 참깨와 들깨를 터는 일이었다. 물론 기계도 있지만 부친과 함께 도리깨질을 하는 수작으로 해냈다. 도리깨로 깨의 이삭을 두드려 낟알을 정성스럽게 떨었다. 그래야만 보다 좋은 품질의 깨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품절남 소매점옆에 부모가 운영하는 산성고추기름방앗간에서 일손을 도왔다. 품절남 자리는 방앗간을 하던 곳이다. 채소와 과일의 저장고가 필요해서 방앗간이 옆집으로 이사를 했다. 일을 마치기 전에 식당에 납품하는 일도 맡았다. 이 대표가 합류하면서 40년 이상 운영하고 있는 방앗간은 경기도로부터 모범업소로 두번이나 지정받아 인테리어 변경 지원금을 받았을 정도로 시장내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이광수 대표는 “요즈음 모든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오르고 있어 서민들의 삶이 매마른 땅의 흙처럼 팍팍해 지고 있다”며 “좋은 제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조금이라도 서민밥상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품절남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밥상머리가 즐겁고 화기애애해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면서 "품절남이 추구하는 것중 하나가 최상의 식자재로 최고의 밥상이 차려지길 기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성찬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golfahn58@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