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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프랑스 니치 퍼퓸하우스 오르메, 향으로 기억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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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프랑스 니치 퍼퓸하우스 오르메, 향으로 기억을 짓다

오르메 설립자 밥티스트와 조향사이자 어머니 마리 리세. 사진= SE international이미지 확대보기
오르메 설립자 밥티스트와 조향사이자 어머니 마리 리세. 사진= SE international
지난 8일, 프랑스 니치향수 ‘오르메(ORMAIE)’의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했다. 니치향수답게 독창적인 향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어느 정도 짐작했다. 하지만 ‘학교 교실에서 쓰던 책과 연필의 내음’, ‘나뭇바닥 공연장에서 느껴지던 특유의 향취’, ‘손에 잘 길들은 가죽의 향’까지 기억 저편 아련한 감정까지 자극하는 향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기자가 방문해 시향한 향은 약 12가지. 차례로 향을 감상하다 보니, 오르메를 설립한 모자가 그려낸 추억의 파편들이 눈앞에 그려지듯 펼쳐졌다.

오르메는 아트 디렉터 출신의 밥티스트(Baptiste)와 그의 어머니이자 조향사인 마리 리세(Marie-lise)에 의해 2018년 설립되었다. 밥티스트는 루이비통과 지방시에서 브랜드 디렉터로 일했고, 마리 리세는 겔랑, 디올, 랑방 등 명문 하우스에서 조향사로 활동한 바 있다. 그녀는 '향수 산업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의 FiFi Awards(Fragrance Foundation)를 수상한 경험도 있다.

이들의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인상 깊은 건 향에 대한 철학이다. 오르메는 향수를 단순한 냄새가 아닌 ‘이야기를 담는 매개체’로 정의한다. 프랑스어로 느릅나무인 ‘오르메’라는 이름부터, 밥티스트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놀던 마당의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네이밍이다. 오르메의 향 하나하나에는 가족의 추억,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이 층층이 녹아 있다.
잠실 에비뉴엘과 압구정 갤러리아 매장에 전시된 오르메 제품들. 사진=SE international이미지 확대보기
잠실 에비뉴엘과 압구정 갤러리아 매장에 전시된 오르메 제품들. 사진=SE international

기억에 남는 향은 ‘이본느(YVONNE)’다. 설립자의 할머니와 그녀가 애용하던 클래식한 장미 향수를 오마주해 만든 향이다. 파출리와 장미, 블랙커런트와 붉은 과일이 어우러져 현대적이고 생생한 장미향을 완성했다. 깊게 물든 장미잎처럼, 세월을 따라 멋과 교양이 짙어지는 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르파상(LE PASSANT)’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은 향이다. 라벤더를 즐겨 사용하던 아버지의 취향과, 곁에 두었던 아르메니안 페이퍼에서 영감을 얻었다. 라벤더를 남성적으로 풀어낸 듯하면서도 달콤한 바닐라의 잔향이 묘한 감미로움을 남긴다.

개인적인 추억을 환기시킨 향도 있었다. 독일어로 무용수들이 공연 전 행운을 빌 때 쓰는 말에서 이름을 따온 ‘토이토이토이(Toi Toi Toi)’다. 나무와 왁스가 어우러진, 나뭇바닥 공연장의 특유의 향을 샌달우드와 블랙페퍼로 세련되게 구현했다. 장기자랑이었을까, 재롱잔치였을까. 오래된 공연장 무대 뒤편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그 순간—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이 문득 되살아났다.

특정 향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은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로 알려져 있다. 후각은 뇌의 감정 중추를 직접 자극해, 단순한 기억뿐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까지 되살린다. 오르메의 향은 바로 이 지점을 정교하게 파고든다. 한 번 시향해보면 마음에 울림이 있는 이유다. 오르메는 향을 감정과 예술의 언어로 다루는 브랜드다.

오르메 브랜드 비주얼. 사진=SE international이미지 확대보기
오르메 브랜드 비주얼. 사진=SE international

브랜드의 예술성과 장인정신은 용기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12각 유리병과 너도밤나무를 깎아 만든 수공예 캡은 오브제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향병은 아침 햇살을 받을 때 은은하게 빛나며 오르메 고유의 미감을 드러낸다.

캡 디자인에도 각 향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레 브휨’은 오렌지나무 첫 열매에서, ‘벵트위트 데그레(28°)’는 한낮의 태양빛에서, ‘파피에 카르본’은 유년 시절 학교에서 날리던 부메랑에서 영감을 얻었다. ‘마크 파쥐’는 중동 아치형 문을 형상화한 구조다.

오르메는 지속가능성에 있어서도 뚜렷한 철학을 지닌다. 본래 브랜드명처럼 느릅나무로 캡을 만들고자 했으나, 생장 속도를 고려해 FSC 인증을 받은 너도밤나무로 대체했다. 패키지와 시향지 역시 FSC 인증 펄프를 사용하고 향병은 재생 유리로 제작된다.

오르메는 올해 한국 진출 3년째를 맞아 한국 시장에서의 확장 전략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밥티스트가 내한해 향수 매니아들과 함께 프라이빗 시향회를 열며 오르메의 새로운 라인업을 소개하는 자리도 가졌다.

오르메의 한국 공식 수입사 SE international(상응무역) 관계자는 “올해 5성급 호텔들과의 협업 및 신제품 출시를 계획 중”이라며 “더 많은 고객들이 오르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접점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월드타워점과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EAST점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일부 백화점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구매 가능하다.


이정경 기자 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