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금리인하 압박에도 한국은행이 또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역대 최장 금리동결 기조가 이어졌다. 금리인하 기대감이 시장에 확산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고, 가계부채도 급증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고금리 장기화로 물가가 안정되고 경기가 점차 둔화되고 있지만 한은은 금융 안정을 택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2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3.50%로 동결했다.
지난해 2월부터 13차례 연속 동결로 역대 최장인 1년 7개월 9일 동안 같은 수준의 기준금리 운용이다. 종전 최장 동결 기록은 2016년 6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1년 5개월 21일이다.
일각에선 한은이 이르면 8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결국 금통위는 금리인하에 보수적인 접근을 유지했다. 이번 금리동결은 금통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물가와 경기만 놓고 봤을 때 한은이 이미 금리를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2.4%를 제시했다. 지난 5월 전망(2.5%)보다 0.1%포인트(p)를 낮췄다. 아울러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2.6%에서 2.5%로 0.1%p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성장률 하향 배경으로 1분기 일시적 요인에 따른 '깜짝 성장'을 꼽았지만, 결과적으로 향후 경기 회복세는 보수적으로, 물가는 우호적으로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수도권 중심으로 치솟는 집값과 급증하는 가계부채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와 경기 측면에서는 향후 적절한 시점에 금리인하를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면서 "다만 금융 안정이나 글로벌 위험 요인이 상존하기 때문에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인하의 시기와 폭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융 안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이기 때문에 그런 각도에서 보고 있다"면서 "한은이 금리를 급히 낮춘다든지, 유동성을 과잉 공급함으로써 부동산 가격 상승의 심리를 자극하는 그런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연내 금리인하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큰 편이다. 이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다소 매파적 스탠스를 유지했지만 3개월 뒤 금리인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금통위원이 6명 중 4명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이 총재 취임 이후 한은은 금통위원이 향후 3개월 내 금리 수준을 익명으로 제시하며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시장과 소통하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있다. 석 달 내 금리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금통위원들의 수는 7월 2명에서 이달 4명까지 확대됐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이제 물가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사실상 가계부채가 정책 결정의 핵심 변수가 됐다"면서 "결국 스트레스 DSR 시행과 최근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상 효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6주 뒤인 10월 금통위까지 충분한 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내 인하는 확실하지만 10월 인하를 장담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