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금융권 8월 가계부채 증가액이 10조원 안팎에 달하면서 금융당국 책임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1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아직 공식 통계 집계 전이지만 8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10조원을 소폭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8월 25일까지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7조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8월 마지막 주에도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달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이 실제 10조원을 넘으면 2021년 7월(+15조2000억원) 이후 최대치다. 당시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연 0.50%로 장기간 유지하면서 저금리를 틈타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아직 기준금리가 연 3.50%로 높은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수준의 영끌 수요가 나타난 셈이다.
올해 들어 금융권 가계대출은 1월 9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시작으로 2월(-1조9000억원)과 3월(-4조9000억원)까지 두달 연속 하락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하반기부터 미국과 한국의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선반영되면서 4월부터 증가 전환 하더니 4월(+4조1000억원), 5월(+5조3000억원), 6월(+4조2000억원), 7월(+5조3000억원) 등 내리 5조원 안팎의 증가세가 이어졌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안일한 판단이 현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6월 25일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이 한 주도 안 남은 상황에서 9월로 연기를 결정했다.
일각에선 당시 연기 배경으로 4·10 총선에서 참패한 정부와 여당이 대출 옥죄기에 나서기에 부담이 컸을 분석을 내놨다. 당장 규제 강화가 가계대출 규모를 감소시킬 순 있지만 서민들 '돈줄'을 끊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당국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6월 하순에는 이미 부동산 시장이 과열 양상에 진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오판'을 내렸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향후 1년 후 집값 전망을 나타내는 주택가격전망CSI는 3월 95에서 4월 101로 올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100을 웃돌았다. 이후 5월 101, 6월 108, 7월 115로 오름폭을 점차 키웠다. 이 지수가 100보다 클 경우 1년 뒤 현재보다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가구가 더 많다는 뜻이다.
집값도 꿈틀대고 있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3월 넷째 주부터 8월 넷째 주까지 23주 연속 상승했는데 금융당국이 연기 결정을 내린 6월 넷째 주에는 14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서 퍼져있는 상황에서 향후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오를 일만 남았다는 두려움이 패닉바잉 현상으로 이어졌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두 달간 대출문을 더 열어두기로 하면서 막차 수요가 몰렸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당국이 '포퓰리즘'에 기대 내린 결정으로 서민들의 대출문은 더 좁아졌다는 분석이다. 고금리 장기화로 내수가 얼어붙고 서민·소상공인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가 늦어지는 원인으로 집값과 가계부채를 꼽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우석경제관에서 열린 서울대와 공동 심포지엄에서 "현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면서 "경기가 어려워지면 정부가 임기내에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다음 정부로 미루는 편한 선택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문제가 너무 심각해 한은이 올해 안에 금리를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가계부채는 금리로 조절하기보다는 대출 총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