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李에 '대통령 행세냐'더니 대선 앞두고 은행장 간담회 개최

명분은 미국발 관세 전쟁에 대한 금융권 대응책 마련이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위축된 정국 주도권을 다시 잡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이 대표 간담회에서 한바탕 곤욕을 치른 은행권은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은행 때리기'가 재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 등 국회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5명(이헌승·유영하·김재섭·강민국)이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은행권에서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장을 비롯해 백종일 전북은행장,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가 참석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만남이 은행권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월 이재명 대표가 은행장들을 소집했을 당시 "벌써 대통령 행세냐"는 비판을 쏟아낸 것을 의식한 듯 은행권의 소상공인 금융지원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건의 사항을 청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윤한홍 위원장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많이 듣고 반영할 것"이라며 "경제가 엄중한 상황에서 민간 은행에 (정치권의) 요구사항을 쏟아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겠다"고 간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은행권은 청년고용연계자금 확대 편성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 규제 완화, 금융사고 공시 과정에서 실제 손실과 추정치 구분 적용, 가상자산 거래소 연계 은행 확대 등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간담회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은행권 입장에선 국정 공백 상황에서 정치권과 잦은 만남이 달갑지는 않은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 상황에선 만남 자체가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 간담회 당시 이 대표가 특정 언론사 광고 집행을 거론하자 은행들은 차기 대선주자의 광고 중단 요구로 받아들여 해당 언론의 광고를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은행들이 정치권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압박 수준을 보여준다.
특히 선거철을 앞두고 민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 금융정책에 은행권이 동원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관세 전쟁 격화로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뿐 아니라 은행의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지난해 소상공인 금융지원을 위해 각 은행별로 모두 2조1000억원을 갹출해 지원했다. 올해부터는 매년 최대 7000억원씩 3년간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다 어려운데 은행만 돈이 넘쳐난다는 인식이 정치권에 넓게 퍼져 있는 것 같다"면서 "관세 전쟁이 본격화돼서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은행도 건전성 지키기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데, 표를 얻기 위한 경쟁에 또다시 은행이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털어놨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