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노믹스' 주도할 서강학파 대해부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현재 국내 경제 분야 인맥을 대표하는 집단으로는 대학을 기준으로 한 서울상대학파와 서강학파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서울상대학파가 ‘분배’를 중시하는 집단이라면, 서강학파는 철저하게 ‘성장’을 중시하는 집단이다. 서강학파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구식 경제근대화 모델을 토대로 대기업‧중화학공업 중심주의적인 경제정책과 함께 수출지상주의 정책을 통해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주도했다.
70년대 개발경제시대를 주도했던 ‘서강학파’라는 표현은 경제학계를 주도한 학문적 세력이라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한 집단을 지칭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강학파의 태두인 남덕우 전 총리는 “서강학파라는 말은 미국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우고 직간접으로 정부정책에 영향을 끼친 신진 경제학자들을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집단이라기보다는 서강대 교수 출신의 관료를 통칭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전무했던 박정희 정권 당시 서강대 교수들은 당연히 개발경제를 이끌 재목으로 평가됐고, 정책자문 역할에 이어 남덕우 교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부상이 가능했다는 게 정설이다.
서강학파 가운데 ‘빅3’로 불리는 남덕우-이승윤-김만제는 서강학파 1세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화학공업 육성 등을 통해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인 세 사람을 차례로 경제관료에 발탁, 개발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미국유학 1세대인 이들 3명은 보수적 안정론자로 시장경제 신고전주의파 이론에 입각,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통한 근대화를 정부에 적극 자문했다.
서강학파 3세대로는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이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선두주자다. 서강학파 2세대인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김광두 원장은 박 당선인 캠프에서 성장 정책을 총괄했다.
그러나 서강학파는 1997년 출범한 금융개혁위원회를 끝으로 화려했던 30여년간의 경제주역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게 된다. 서강학파의 대미를 장식한 금융개혁위원회는 박성용 당시 금호그룹 회장이 위원장을, 김병주 서강대 교수가 부위원장을 맡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지난 2006년 2월 21일. 당시 청와대는 장문의 글을 홈페이지에 띄웠다. 제목은 ‘압축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 청와대는 “외환위기로 압축성장은 지속 불가능한 성장모델이었음이 입증됐다”며 “그것은 ‘서강학파’의 종언(終焉)을 뜻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한국의 경제정책은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이어져왔던 성장기조에서 탈피, 분배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정책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가 서강학파의 종언을 선언하기 이전에도 서강학파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한 서울대학파가 전면 배치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한 원인으로 서강학파를 지목, 경제수장의 교체명분으로 삼았다. 성장중심의 경제철학을 가진 서강학파 대신에 분배중심의 서울상대학파를 기용한 것이다.
그러나 서강학파는 그동안 학‧석사 3300여명, 박사 100여명을 배출해 한국 경제계에서 여전히 막강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중심으로 서강학파는 다시 부활의 나래를 펼치며 분배에 발목이 잡혀 멈춘 성장시계를 다시 돌리는 ‘성장정책’의 전면에 나설 태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