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기억을 파고드는 그 날의 분주함/ 아지랑이 홰치듯 봄은 밀려오고/ 따스한 손길이 빛의 수레바퀴 같아/ 영원히 구르겠거니 했다/ 숭고를 잊은 작은 기쁨이어야 했다/ 울타리 넘어 타인이 세운 가공물에 탐닉하고 있을 때/ 활화산은 조금씩 열기를 빼고 있었다/ 회색의 음모가 담쟁이를 타고/ 모르스 부호를 남발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비릿한 슬픔의 전조를 보낸 이/ 무관심이 절정이었음을/ 이끼 낀 계곡의 전령이 사라짐을 알렸다
지난 초겨울 광주문화재단 남한산성 아트홀 소극장에서 2021 경기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서 안지형 안무 및 연출의 「그 사라짐에 대하여」는 게임엔진 유니티를 활용한 세컨드윈드 스테이지의 신작이었다. 평균 연간 1권의 책을 저술한 현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사라짐에 대하여’(Pourquoi tout N'a-t-il pas Deja Disparu?)를 작가적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철학을 춤으로 그린 것이었다.
「그 사라짐에 대하여」는 그리운 이들과의 이별과 소중한 것들의 사라짐에 관한 안지형 식(式) 사유의 작품이다. 그리운 것들은 내 곁에서 떠난 듯하지만 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봄날 같던 온기를 간직한 사람들은 지구별에서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별이 되어 아름답게 태어나고 성장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기후 문제없이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사라진 것들 들을 위한 시적 감수성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짠 안무가의 간절한 기도가 작품에 담긴다.
가슴 먹먹하게 그리움을 일구어내는 안지형의 안무와 연출력이 놀랍다. 공개적으로 대중과 만나기 힘든 때에 제한된 공간에서의 움직임으로 울분과 사라짐에 대한 사유가 지속되고 신비적 사운드와 영상이 안무가의 의도와 부합된다. 가까운 듯 먼, 먼 듯 가까운 별리의 두께는 사라짐의 깊이감을 심화시킨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촘촘히 짠 슬픔은 운율을 섞어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안지형의 몸 시(詩)는 무용수 하나 하나의 움직임을 시알로 만들어버린다.
「그 사라짐에 대하여」, 가슴 먹먹하게 슬픔을 일구어내는 안지형의 놀라운 기교를 찬한다. 크리에이티브 퍼포머: 김예원, 김승혁, 정주희, 장수진, 박승민, 이세나, 안지형의 춤 연기가 잡힐 듯 먼 이미지 중심에 진정한 공허를 일구면서 내면의 진동을 찾아 영상과 조화를 이룬다. 안무가는 사라짐과 대면할 그 날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한다. 기도하면 만남은 이루어진다. 안무가는 자신의 명제 ‘이미지’, ‘의미’, ‘감각’, ‘존재함’에 대한 정진을 알린다.
안무가는 명제에 대한 자신의 해답을 정해놓고 있다. “이미지 재생의 그물망 속에 갇힌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유한다. 의미(dianoia)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의미로 속이는 감각의 시대에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의 복원을 갈망한다. 인간이 모여서 사는 세상에서 함께 모여서 서로를 축하하고 즐기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모사 이미지는 존재를 대리할 수 없다. 온전하게 존재할 때 아름답다”라고 생각한다.
안지형은 다양한 무용수의 움직임의 배열과 동시에 게임 엔진 유니티를 활용하여 연출한 미디어 아트 영상을 배치함으로써 이미지 확장을 극대화시킨다. 현대문명의 편리함 속에 사라져 가는 ‘정’을 유물화(唯物化) 시키고 싶어 한다. 3시제 걸친 ‘사라짐‘에 걸친 관한 사유는 감각적 터치와 서정 넘치는 통섭의 가치를 실현했다. 문명이 전통적 가치와 느림의 미학을 쓸어버리고 있는 황망한 사회에서도 현대를 앞서가는 감각으로 달과 별을 노래하는 일은 분명한 용기이다. 앞으로도 진전을 입증하는 걸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