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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27)] 걸으며 얻는 소소하지만 엉뚱 발칙한 영화 '텐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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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27)] 걸으며 얻는 소소하지만 엉뚱 발칙한 영화 '텐텐'

일본 성장 영화 '텐텐'.
일본 성장 영화 '텐텐'.
일본 영화들은 엽기적인 내용도 많지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도 많다. 일본 국민 정서가 어느 가정에서나 어릴 때부터 남에 대한 배려를 자신의 이기심보다 우선적인 가치로 둔다.

영화 '텐텐(転々)'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한자 '구를 전(轉)'을 겹쳐서 쓴 것이고 일본식 발음이 '텐'이다. '구르고 구르며 돌고 돈다'는 의미로서 거칠게 살아가는 혹은 운명적인 느낌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지금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다기리 죠라는 일본 남자배우의 연기와 매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빈티가 줄줄 흐르는 가난한 대학생역을 연기하고 있으며 역시 그로 인하여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아주 흔치 않은 만남을 통하여 관객들을 호기심 속으로 이끌어간다.

일본은 대학생들에게 파트 타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소심하고 게으른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다. 돈을 갚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사채업자가 나타나서 양말을 입에 집어넣는 등 돈을 갚아라는 협박에 시달린다. 온갖 협박에 못이겨 돈을 갚아보려고 애쓰던 그는 어렵게 일하기보다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한다.

다시 찾아온 사채업자는 겁박 대신 의외의 제안을 한다. 자신과 함께 도쿄 시내를 몇 일만 걸어주면 빚을 갚고도 남을 액수인 1000만 원을 준다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사채업자는 평소에 그를 괴롭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왠지 우울해 보이고 기운이 없어 보인다.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어 암담하던 그는 믿기지 않는 제안을 불안해하며 동의한다.
이제껏 괴롭혀오던 사채업자를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나선 그는 사채업자와 함께 도쿄 시내를 걷고 좋아하는 음식도 같이 먹어준다. 이 영화는 그들과의 긴장감을 호기심으로 따라가던 관객들은 놀랄만한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의외의 행동을 하는 사채업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알게 된 그의 행동의 비밀은 시원함보다는 의구심에서 관객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바뀐다. 그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여 다투는 과정에서 너무나 사랑하던 그녀를 죽게 만들었고 괴로워서 온갖 생각을 하다가 자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는 길에 동행하여 달라고 주인공에게 부탁했던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는 지금도 여운을 남긴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심이나 배신감으로 죽이게 됐을 때 어떤 마음일까? 어떤 사람이든 간에 부모형제 혹은 부부 등 갈등이 없는 경우가 없고 격한 분노의 감정과 그후의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그런 분노가 생겼다는 것을 후회한 적도 있을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을 겪고 있는 사채업자의 내면과 그 고통에 감정이입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아마도 그가 많은 채무자들 중에서 그를 선택한 것은 금전적 고통속에 살고 있는 청춘에 대한 구제를 통하여 세상에 대하여 무엇보다 이제는 용서를 받아줄 수도 없는 아내에 대한 속죄는 아니었을까?

사채업자가 걷자고 한 도쿄 뒷골목은 아내와 자주 산책하던 길이었고 주인공과 들른 식당은 그녀와 함께 식사하고 데이트하던 곳이었다. 주인공은 남자에게서 연민과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그리워하던 자신의 아버지 모습이 겹쳐 보였고 이제 더 이상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채업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자를 따라 들른 어느 가정집에는 미모의 중년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와는 신부나 신랑 부모인 척해주고 사례를 받는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할 때 만난 사이라고 한다. 그녀의 먼 친척 조카가 찾아오고 그녀는 주인공과 사채업자를 아들과 남편으로 소개한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소원하던 가족을 그 순간 가져본다. 더구나 그녀를 속이기 위해서 사채업자를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결말은 예정된 헤어짐으로 끝나지만 영화는 특이한 잔상을 남긴다. 이 영화를 추천한 MBC제작사의 김흥도 감독은 영화를 보고나서 아주 비극적인 소재를 희망으로 승화시키려고 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관객들은 각자의 해석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조심스럽게, 참을성 있게 사랑해줘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면 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사랑의 표현을 자신의 기대와 결부시키지 말고 상대방의 존엄을 지켜주고 먼저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