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이월의 발레터에서 채집한 옹골진 창작발레…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공유
2

이월의 발레터에서 채집한 옹골진 창작발레…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백연 Ballet Project Y’ 주최·주관, 발레블랑·이화발레앙상블 후원, 백 연(백연 Ballet Project Y 대표, 동국대·수원대 객원교수, 발레블랑·이화발레앙상블 단원) 안무의 「ORIGIN」이 공연되었다. 안무가의 사유는 원초적 춤의 진지함을 두루 거쳐 무용사에 각인된 현존 안무가·무용수의 의지적 춤의 본질과 가치에 이음하고 춤은 재조명된다. 아날로그와 결별을 고하고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른 가상의 춤 이미지가 급부상하자, 고유한 춤의 특성과 일회적 시공간을 반영하는 춤 현장의 아우라와 감동은 상대적으로 감소 되거나 상실되고 있다.

안무가 백 연은 유한한 몸을 예술적 자산으로 삼고 명멸하는 춤을 존재론적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보편화된 역사적 계보를 만들고, 창작성을 드높인 독창적 원형 감각을 소지한 춤의 존재감을 표출시키며, 춤의 근원과 본질에 접근한다. 이런 표현방식으로 가상과 현실 세계의 혼재 속에 나타날 미래의 춤이 실존적 인간의 삶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불가분의 존재로서 공존하기를 염원한다. 전통에의 존중과 기법 수용 사이의 고민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 한 세계의 파괴라는 데미안적 운명을 닮아있다.
발레 「ORIGIN」은 순응적 정진의 자세로 춤의 현실을 대면하며 성찰하고, 과거의 흔적을 미래의 자산으로 삼는다. 춤은 프롤로그(춤에 관한 사유의 시작), 1장 ‘희미한 족적을 따라’(욕구와 충동으로 만들어진 춤의 시원), 2장 ‘소멸하는 운명, 춤’(세상을 뜨는 춤), 3장 ‘다시 타오르는 생명의 욕구, 춤’(축복으로 기능하는 타인 지향의 삶 자체로서의 춤), 에필로그(유영 속성의 춤)로 구성되어 있다. 방대한 사안에 대한 심오한 성찰은 안무가는 모름지기 활화산 적 춤에 대한 화부(火夫)의 성실한 역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프롤로그; 무용수(백 연)가 관객 향(向) 가상현실체험 VR을 들여다보며 춤 사유가 시작된다. 한 줄 이거나 캐논형 움직임의 다양한 일상복의 무용수들이 가상공간 내의 아바타나 가상계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이중적으로 표현한다. 바닥에서 입체적 사각형 판들이 순차적으로 올라오는 영상, 한 줄의 무용수들은 공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흰색 바닥 판을 뛰어넘으며 퇴장한다. 영상과 무용수의 움직임은 게임 공간과 아바타의 이미지를 보인다. 무용수의 춤 이미지에 나타나는 얼굴 형태가 여러 번 바뀌면서 혼합·재생산·창조의 가상공간에서의 춤의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된다. 깨지는 유리 소리와 함께 무대 위에 입체적으로 떨어지는 유리 조각이 사고에 경종을 울리고 본질을 되짚는 기원적 탐구의 세계로 진입한다.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1장 ‘희미한 족적을 따라’; 인간의 욕구는 춤을 탄생시킨다. 욕구와 충동으로 만들어진 춤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현실 공간의 무용수(백 연)는 찰흙 판의 앙리 마티스 ‘춤Ⅱ’의 이미지 영상을 바라보며 단서를 밝힐 듯 다가선다. 하늘과 땅이 어우러진 가운데 원무를 하는 인간의 역동적인 모습이다. 안무가 백 연은 찰흙 판에 찍혀지는 자신의 신체 부분의 자국들로 인간의 흔적 욕구를 표현한다. 움직임이 더해지면 그림도 확장되다가 흐리게 사라진다. 찰흙 판을 세워 그것에 축적되어 나타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인류의 시작을 상징하는 원시적 의상의 남녀 무용수(류형수, 전소희)가 풀벌레 소리와 더불어 나타난 숲의 이미지를 바라본다. 서로의 다양한 움직임을 모방하면서 동작을 이어간다. 인간의 춤이 모방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서서히 무대 뒤편으로 찰흙 판이 멀어지고 춤의 기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용수들은 몸을 씻고 수렵·채취하는 등 원시시대 인간의 일상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원시적 의사 표현 수단으로서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여덟 명의 무용수는 지속적 움직임을 이어가고 모방과 반복으로 연결된다. 핵심적 제스처에서 도출된 움직임의 동작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구도로 원시무용이 표현된다. 안무가는 움직임 언어로서의 춤이 가지는 전달력의 신비함을 드러내고 기원적 춤은 인간의 삶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예술임을 밝힌다. 원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원무와 더불어 제의·사냥·풍요를 상징하는 다양한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춤이 본능을 표출하고 카타르시스의 경험을 불러일으키듯 더욱 역동적인 춤이 되어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원시 춤의 원무를 기점으로 원시 분위기의 곡 마지막까지 고조된다. 응집된 구도에서 규칙적 움직임에서 무용수 각자의 내부에서 표출되는 에너지를 쏟아내듯 몸에 조화하는 서로 다른 움직임을 표현한다. 이것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인간의 특성이 원시 춤에도 여실히 드러났음을 상상의 춤 이미지로 나타낸다.

원시적 춤은 상부 기둥에서 내려온 대형 캔버스를 기점으로 점차 가라앉고 무용수들은 캔버스 아래서 자기의 신체 중 한 부분을 쌓아놓는다. 신체 중 얼굴을 내밀었던 무용수만 남고 모두 퇴장한다. 발레리나(백 연)는 상부의 캔버스 아래서 이 무용수의 얼굴을 마주하며 춤의 역사적 흔적을 추적하듯이 무용수의 신체 움직임을 따라 하지만, 무용수의 얼굴은 어두운 조명 속으로 사라진다. 이러한 움직임과 동시에 캔버스에는 고대 무용, 중세 농민의 춤과 죽음의 무도, 서양 나라들의 민속춤, 루이 14세의 춤 등 역사적 계보를 이어가는 서양 춤의 이미지가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발의 다섯 포지션을 만든 피에르 보샹의 사진이 나타난다. 사진과 맞물려 남자 무용수(이우선)는 서양의 궁정무용시대 남자 의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오브제를 어깨에 걸치고 등장하여 발레의 5가지 발 포지션이 언급될 때마다 그 포지션을 리듬에 따라 수행한다.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1장은 니체의 예술 충동의 원형을 동인으로 한다. 안무가는 발레의 균형과 절제, 이성과 지식체로서의 이미지와 아폴로적 충동 이미지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안무에 적용한다. 그에 맞는 구도와 동작을 선정하여 원시적인 무용에 비해 상당히 절제적이고 균형적인 클래식 발레 동작의 이미지를 미적으로 확장한다. 아울러 안무가는 서양무용사의 보샹 기점의 춤 표현을 위해 1) 궁정 예복 스타일의 궁정발레 무용수, 2) 로맨틱 튜튜의 낭만주의 발레 무용수, 3) 클래식 튜튜의 고전주의 발레 무용수, 4) 현대발레 느낌의 20세기 조지 발란신 스타일의 무용수, 5) 몸의 형태가 잘 드러나는 의상의 컨템포러리 발레 무용수를 등장시켜 자기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시대적 움직임의 특징을 반영한다. 시대별 의상의 무용수들은 캔버스에 얼굴을 가린 채 보샹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남자 무용수 뒤에 따라붙어 발레의 5가지 발 포지션을 외치는 멘트에 따라 움직이고, 빠른 박자로 변화되어 각자 시대에 맞는 움직임으로 변형된다. 안무가는 5가지 발 포즈는 같지만 움직임의 스타일이 확연한 차이를 보임으로써 시대적 움직임과 춤의 특징을 반영한다.

보샹의 발 포지션을 표현하는 발레리노는 5가지 포지션에 대한 나레이션에 따라 복잡한 동작을 격정적으로 수행하는데, 다리 막에서 무용수(백 연)가 풍선을 공중으로 던지며 등장한다. 풍선은 발레가 추구하는 백색 이상에 대한 갈망, 한계를 넘어서 가볍게 날아오르는 특징을 상징한다. 바흐(Jubile Bach)의 Violin Concerto in E Major BWV. 1042-I. Allegro 곡이 화려한 클래식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악과 함께 조명기와 토슈즈를 엮어 만든 오브제가 올라가면서 클래식 발레에 등장하는 샹들리에의 느낌이 나타나고, 다크 블루의 조명이 바닥에 깔리면 절제되고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클래식 발레 분위기가 연출된다. 다시 등장한 무용수(백 연)는 흰색 대형 풍선을 던져 받으며 무용수들 틈으로 들어간다. 비상하려는 인간 욕구를 반영한 이 풍선을 발 포지션을 표현한 발레리노에게 넘겨주고 하강하는 토슈즈로 제작한 샹들리에에 다가가 불을 끈다. 발레라는 춤의 장르도 그 황금기를 지나 시대의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2장 ‘소멸하는 운명, 춤’; 춤은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거나, 보존과 창조의 순환을 이어가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듀엣(김아림, 김은정)은 생상의 ‘죽음의 무도’에 맞추어 대립의 움직임을 이어가며 보존과 창조를 표현한다. 클래식 동작과 현대적 움직임을 순차 하는 듀엣을 통해 현대적 움직임이 클래식 움직임을 개조시키려 들지만, 클래식 움직임은 자신을 보존하려는 느낌으로 무용사에서 이어지는 보존과 창조의 순환을 보여준다. 각 시대의 춤을 상징하는 무용수들은 더욱 빠르고 웅장해지는 ‘죽음의 무도’에 맞추어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역동성을 더해가다가 한 사람씩 자신의 옷을 벗어 위를 향해 던진다. 시대를 드러내는 특징적 의상을 벗어 던진 무용수들은 자유로워진 몸짓으로 현대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보샹의 다섯 포지션을 연기한 남자 무용수는 던져진 의상을 모아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 후 그것들을 떨어뜨린다. 몸을 매개로 한 춤의 보존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해 완전함을 이루기 어려우며 인간의 변화와 창조의 욕구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형될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다. 안무가는 ‘죽음의 무도’를 사용함으로 뒤에 나타날 연출과 구성에 대한 복선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생상스의 음악이 끝나면서 무용수(백 연)는 앞부분에 떨어진 시대별 춤의 의상들 사이에서 전신 사람 해골을 꺼내어 안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무대 중앙으로 향한다. 이때 흑색의 호리전트에서 모래 영상이 떨어지고 무대 바닥에는 모래 소용돌이의 영상이 비추어져 무용수와 해골이 모래 속으로 빠져드는 이미지를 보인다. 해골을 부둥켜안고 모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온 무용수는 이 해골을 안타깝게 감싸 안으며 퇴장한다. 동시에 이러한 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앞쪽에 죽은 듯 바닥에 늘어져 있는 여자 무용수(전소희)와 서서히 걸어 들어오는 남자 무용수(류형수)의 듀엣을 보여준다. 퇴보해가는 춤의 생동성 상실감을 표현하면서 춤의 영원성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표현하는 듀엣의 연기가 마무리된다. 생상스의 곡이 모티브가 된 구성은 인간의 삶 속의 죽음과 춤의 퇴보를 연관시킨다. 안무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죽음이 춤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춤을 잘 추는 여부와 상관없이 개개인 춤은 모두 퇴보할 수밖에 없으며, 역사 흐름 속에 황금기를 누린 어떠한 춤의 장르라도 시대의 흐름 속에 잊히고 변형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죽음 앞에서 삶을 더욱 갈망하듯 인간의 춤은 퇴보와 소멸 속에서 더욱 타오르고자 갈망한다. 안무가는 지금 자신의 몸을 통해 발현되는 춤은 퇴보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영원함을 꿈꾼다.

3장 ‘다시 타오르는 생명의 욕구, 춤’; 축복으로 기능하는 타인 지향의 삶 자체로서의 춤이 연기된다. 찰흙 판을 밀면서 맨발로 등장하는 무용수(백 연)는 그 안에 가득 채워진 곡식더미에 떨어지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고 곡식을 쏟아낸다. 반복적으로 무용수의 여러 신체 부위에 빛을 따라 곡식을 쏟아내다가 심장 소리와 함께 움직임을 시작한다. 안무가는 생명을 약동의 근원적 재료들을 연출의 소재로 삼으며 춤의 매개가 되는 인간의 몸을 곡식으로, 영혼을 빛으로 비유하고 심장의 고동 소리를 생명의 약동으로 상징한다. 곡식은 모래와 유사한 모양을 택하여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명을 이중적으로 상징한다. 곡식과 빛으로부터 발현되는 생명의 생동성을 모래 속에서 피어오르는 꽃으로 묘사하고 신체와 영혼을 매개로 심장의 고동 소리에서부터 출발하여 본능적으로 움직여지는 춤을 나타낸다. 심장의 고동은 리듬의 근원으로 인간은 이 심장 소리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며 이는 어느새 리듬이 되어 사람들을 춤추게 한다. 무용수는 Johann Sebastian Bach의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 음악에 맞추어 빠르고 격정적인 움직임을 자유롭게 이어간다. 심장 고동 소리에서 생성된 리듬은 무용수의 몸 안에서 자유롭고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춤으로 나타난다. 이어 여러 무용수가 앞서 무용수가 했던 동작의 형태를 다양한 동작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역동적이고 빠른 군무를 보여준다. 다양한 구도와 캐논 형식의 움직임으로 구성을 전개하고 바흐의 음악이 끝날 무렵에는 자기 특성이 반영된 무용수의 주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무대 중심의 무용수(백 연)는 자유로운 듯 계속되는 회전으로 최상의 생동성을 나타내며 춤을 통해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표현한다. 아홉 무용수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숨소리, 땀, 서로에 대한 지향성, 아우라 등을 나타내기 위해 리듬감 있는 강한 호흡을 함께 내쉬며 객석을 향해 숨소리를 전하여 춤의 절정과 아우라를 표현한다. 한 무용수(백 연)는 여덟 명의 무용수와 상반되게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반복해서 쓰러지는 무용수들을 바로 세운다. 이는 퇴보할 수밖에 없는 춤의 운명 속에서 자신의 몸에서 영원히 최상의 상태로 발현하며 존재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춤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다. 이후 떠나가는 무용수들 가운데 하나의 발목을 잡고 신체 일부를 연결하여 움직여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무대 뒤쪽으로 걸어가던 무용수들도 이러한 형태의 움직임을 만들며 이미지를 확장하고 앞쪽의 두 무용수(백 연, 류형수)의 연결 움직임이 마무리될 때 무대 천장 기둥에서 6개의 캔버스가 내려온다. 모든 무용수가 내려오는 캔버스를 바라보며 무언가에 홀린 듯 따라가는데 한 무용수(백 연)는 따라가는 무용수(류형수)의 발목을 잡아 춤이 실존적 삶에 현재의 상태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에필로그; 안무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떠다니는 춤의 유동적 운명을 사유하며 작은 춤 철학자의 명상을 종료한다. 여섯 무용수는 디지털 얼굴 이미지가 비추어지는 여섯 개의 캔버스 뒤에 자신의 얼굴이 아닌 누군가의 얼굴로 서서 몸통과 하체의 움직임을 나타내어 현실에서의 춤과 디지털에서의 춤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미래 춤의 모습이다. 이때 한 명의 무용수(백 연)는 디지털 영상이 나타나는 캔버스로 신체 부위를 가린 채 춤추는 무용수의 현실적 신체성에 주목하고 이것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신체적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살구색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무용수(전소희)와 함께 듀엣을 이어간다. 이는 현실 공간에서의 신체로 드러나는 춤의 본래 상태에 대한 안무가의 갈망과 염원이다. 두 무용수는 마치 인간의 존재를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춤의 존재에 대한 불가분적 성격을 상징하듯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당기고 이끌어가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무대 뒤 디지털 인간의 두상이 나타난 뒤 바닥에는 흰색 원형 모양의 영상이 나타난다. 검정 의상을 입은 무용수(백 연)는 원형 중심에, 살구색을 입은 무용수(전소희)는 원형 밖 허공 느낌의 공간에 선다. 안무가는 인간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인 춤이 미래에도 같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이처럼 공간의 분리로 표현한다. 유일하지 않고, 개별적이지 않고, 인간과 분리될 수도 있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의 표현이다. 이때 바닥에 나타난 흰색의 원형 공간은 바깥쪽부터 나선 모양을 그리며 서서히 없어져 중심부만 남는데, 중앙의 무용수는 점점 줄어드는 공간에 반응하며 위태로운 듯 움직이면서 바깥쪽에 서 있는 무용수를 향하고 두 무용수는 팔을 뻗어 서로를 바라보며 암전된다. 점차 강화되는 현실 세계에 대한 위기와 춤의 본질에 대한 상실을 나타내고, 실존적 인간의 몸과 상관없이 미래 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표한다.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백연 안무의 'ORIGIN(오리진)' ©Hanfilm


국립발레단 출신의 발레리나 백 연 안무·연출·출연의 「ORIGIN」은 묵직한 사유의 유연한 창조물이다. 탄탄한 이론적 바탕 위에 기교적으로 농익은 춤은 주제적 제목 「ORIGIN」의 가치를 미학의 채운(彩雲)으로 끌어 올린다. 춤은 그녀에 의해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의 대상이 되었고, 춤의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은 춤을 사랑하게 만드는 넘실대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연민과 공감의 카타르시스로 대범을 장착하고 당당하게 시대적 흐름에 조응하며 자기주장을 펼치는 발레 안무가의 모습은 근래에 보기 드문 수범이다. 디지털의 숲에서 발레 주축의 춤의 향방을 논하고 있는 춤 철학자의 예지적 담론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백 연의 주장에 대한 엄숙한 공감은 비단 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ORIGIN」은 주제적 양식, 무용사적 가치, 학문의 외연을 확장하고 타 장르와의 크로스오버를 가능케 하는 소중한 예작(藝作)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