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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안무의 '혼선(混線)'…현대발레에 담긴 인간관계의 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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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안무의 '혼선(混線)'…현대발레에 담긴 인간관계의 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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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안무의 '혼선(混線)'
이정민은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코리아에 이르는 인간관계에 걸친 긴 줄을 잇는다. 9월 7일(수) 여덟 시의 삼성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적 동물’은 인간관계망을 염두에 둔다.”라는 진술에 대한 증거들을 현대적 감각과 담백한 비주얼로 예시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인간관계는 승부를 가리면서 필연적으로 형성되고, 다양하게 과시되면서 확장된다. 안무가 이정민의 줄은 동서양 무용이 즐겨 다루어 왔던 익숙한 상징계를 거치는 인간관계를 상징한다. 설득의 도구는 ‘리본 줄’이며, ‘줄의 뒤섞임’은 ‘혼선’을 의미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안무가의 경험과 관점에 동참한 무용수 개개인의 경험담이 「혼선」에 보태진다. 「혼선」은 발레의 기본 동작 원리를 이용한 접촉 즉흥 방식을 활용하고, 무용수들의 군무는 인간관계 속의 의존적 모습을 표현한다. 안무가가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접촉 즉흥은 순간의 반응과 선택의 자유를 중시한다. ‘리본 줄’은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부여받은 복잡한 인간관계의 상징이다. 사람은 인간관계의 망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고, 현실과 가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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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안무의 '혼선(混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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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고민과 사유의 산책로에서 만나는 명제이다. 인간관계란 처음에 단순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해지고 ‘줄’도 점차 증가한다. 인간은 자신의 공간과 개인의 존재를 찾는 순간에도 인간관계망 속에 위치한다. 원치 않는 만남과 엮이고, 의도치 않은 매듭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 사이에 생성되는 연결고리가 복잡해지면서 ‘혼선’이 일어난다. 안무가는 인간관계에서 이런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음을 알리고 위로를 전한다.
1장 : 사회적 동물 ‘인간’의 탄생; 태초의 움직임이 일어난 곳, 무용의 역사가 쓰인 시원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탐구적 모습의 첫 관문, 신비감이 이는 밝은 화이트 탑 조명으로 인간의 탄생 신비가 표현된다. 난(卵)의 설화와 <데미안>의 서두를 넘어, 이정민의 사유는 낭만을 넘어 곧장 현실로 진입한다. 현실적 대용인 비닐은 엄마의 뱃속을 의미하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받은 인간 관계(줄)를 맺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삶을 살아가야 함을 나타낸다. 스치듯 보이는 붉은 빛이 상징성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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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개인의 존재; 각자의 삶은 기계적 움직임이 당연한 듯 보이는 대량사회의 건조한 열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용수들은 무대의 상수에서 하수로 직선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몸에 엉킨 줄을 풀어내며 개인의 존재에 대해 탐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수한 섬세함을 거쳐야 하는 관계 표현 동작들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가정이 확인된다. 이 과정에서의 인간관계란 직선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형태로 매우 단순해 보인다. 무용수가 등장할 때마다 곁 조명이 켜지면서 각기 다른 삶의 길을 보여준다.

3장 : 의존적인 관계;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관계는 점점 복잡해진다. 이정민 동작의 귀납법은 수사(修辭)가 아니고 과학적 분석을 닮은 듯하다. 인간은 독립적 삶을 추구하지만 여의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사회 속에 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특성을 표현하고자 멜로디를 없애고 사람들의 말소리를 넣는다. 조명도 그림자를 통해 사회 속에 속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다양한 의존적인 관계는 여자 무용수 3명과 남녀 무용수 2명의 접촉 즉흥으로 구성된다. 진지함을 유지하는 방식이 경건하거나 틀에 매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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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인간관계의 망=혼선;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복잡해지면서 ‘혼선’이 일어난다. 이정민은 드러난 오브제로 쓰임을 조각화화하는 마음으로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그 안에서 혼선을 겪는 모습을 분주하게 드러낸다. 음악은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반복적이고 강한 비트가 쓰인다. 마무리의 파도 소리로 인간관계가 복잡한 것은 ‘자연의 순리임’을 밝힌다. 붉은 그림자 조명은 현대인의 인간관계, 바쁘게 바뀌는 흑백 핀 조명은 장을 열 때의 탄생 조명과의 대비적 표현이다. 이정민은 성장하면서 구조의 단순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민 안무의 「혼선」은 창작 발레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설정된 명제의 직조화 과정에서 번뜩이는 재치와 구성력은 안무가로서의 이정민의 미래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이정민 발레의 지속적 발전은 극성 강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혼선」은 조기숙 발레의 자유로운 전통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바람직한 연구자의 태도를 보였다. 「혼선」은 모든 운용 장치가 노출된 가운데 야전에서 기록한 소중한 현대발레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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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