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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은지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자아에 관한 이지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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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은지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자아에 관한 이지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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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
9월 25일(일) 저녁 일곱 시,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밀물현대무용단 주최·주관,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사)한국현대무용협회·(사)밀물예술진흥원 후원으로 밀물현대무용단(총예술감독 이숙재, 대표 이해준) 창단 38주년 정기공연의 주제인 ‘재정립된 관계’ 아래에서 네 번째 차례로 최은지(한양대 무용예술학과 겸임교수)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이 공연되었다. ‘군중 속의 고독’의 최은지 버전은 밀물현대무용단의 화려한 장신구가 되었고, 투병 중인 이숙재 교수의 쾌차를 바라는 눈물의 몸짓이었다.

나노 사회에 적응한 현대인들은 분주한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공동체적 삶은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고, 개인의 파편화는 심화된다. 거듭된 방황 끝,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은 집단을 형성하고 편중된 시선으로 집결한다. 불신 시대의 관계는 또 다른 잠재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한다. 전진하지 못하고 반복되는 자리에 청춘의 외로움은 쌓여가고 갈등은 증폭된다. 이타행은 자신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수행이며, 지치거나 대가를 바라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안무가는 자신을 다독거리고 일으켜 세울 방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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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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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면서 타인과 섞이지 않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작품이다. 안무가는 책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시작한다. ‘나노 사회’에서는 혈연·학연·지연보다 취향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하며, 소속감·믿음·감정이 장전하지 않는 관계는 해체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과정 속에 우리의 외로움은 증폭된다. 안무가는 ‘나’는 ‘우리’ 안에서 괜찮은가를 사유한다. 안무가는 더 차갑고 무의미한 관계들 속에서 관객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가를 찾아보며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의 움직임 리서치 과정에서 안무가가 무용수에게 가장 요구했던 부분은 ‘외로움을 느낄 때, 자신은 어떻게 행동 하는가?’였다. 사람의 눈을 보지 못하고 바퀴벌레처럼 기어다는 모습, 원형 통 안에 갇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 포효에 가까운 괴성 지르는 모습 등 개인이 지는 외로움의 형태를 다양하게 움직임으로 드러내었다. 이번 공연은 개개인의 경험을 움직임에 담아 증폭해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며, 새로운 상황들을 제시하여 그 속에서 외로움을 드러내는 모습들로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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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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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결속과 해체 반복, 갈등과 대립, 그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외로움에 대한 제스처가 무용수의 캐릭터를 말해준다.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장면은 '포옹 씬'이다. 안무가는 「고립의 시대」에서 언급된 ‘포옹을 팝니다.’라는 글귀에서 영감을 받아, 포옹을 사고파는 시대에 외로운 누군가를 안아주고자 하거나 ‘당신은 괜찮은가’라는 물음 대신 조용한 포옹을 통해 작은 위로를 건넨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지나 않은지. 하늘을 보고 양팔을 벌려 안아주거나 안기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그것을 나타낸다.

첫 씬의 빨간 조명은 '뒤섞여있는 공동체'를 뜻한다. ‘흙-자라나는 생명’의 중의적 의미는 출생 때부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뜻한다. 천천히 빨간 조명이 빠지고, 신관계를 형성하면 현시대 인간이 표현된다. 그림자 조명을 통해 수없이 많은 무대 위의 군중이 표현된다. 군중 속의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결속과 해체를 반복한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거울에 비친 듯한 플로어에 비친 ‘사람들’을 나타낸다. 탈의한 채 뭉탱이를 안고 나오는 사람들, 외로움에 사무쳤던 군중 가운데 하나가 안무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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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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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은 ‘결여'가 포인트였다. 완성되지 않은 옷차림으로 보이기 위해 쟈켓을 배꼽 위로 과감히 자르고, 긴 바지의 한쪽을 무릎 위로 잘라버렸다. 앞이 꽉 조여진 셔츠의 뒷면을 풀어헤친 형태 등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완성되지 않은, 결여된 사람들을 표현해내기 위한 장치였다. 의상의 색은 검정과 흰색의 중간색인 어설프게 섞여버린 회색 톤으로 설정되었다. 완성으로 가는 길은 모험이 가득하지만, 희망을 전제한다. 신성한 고독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결여나 어리석게 보이는 우(愚)는 달관과 잇닿아 있다.

강안나의 작곡과 사운드 디자인은 장르 사이의 소통에 집중해 있었고, 소리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첫 장면은 플로어에 맞닿은 몸의 소리를 녹음했고, 실제 공연에서 라이브로 연주하였다. 그 소리가 울려 퍼져 모두가 하나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의도에서였다. 두 번째 음악은 리듬감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의 형성에는 갈등을 초점으로 두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고도시키고자, 점차 리듬과 템포를 쌓아 올렸다. 세 번째 음악은 빗소리를 연상하고 정화의 시간을 갖는 캐릭터가 쏟아내는 에너지와 어울리는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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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는 저돌적 적극성으로 안무작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을 현대무용계에 입적시켰다. 그녀는 늘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다. 최선을 다하자. 춤은 우리의 영양제이다‘의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녀가 춤촘히 짜 내려가는 힘겨운 일상에도 그녀는 늘 미소를 유지한다.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은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숙지한 의지의 표상이다. 벚나무가 가을을 맞으면 갈색 옷을 입듯 ‘섞이지 않는 사람들‘은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거꾸로 표현한 것이다. 가을은 이별하기에 너무 슬픈 계절이다. <섞이지 않는 사람들 2.0>은 늘 푸른 매력의 안무작을 선보여온 최은지의 역량을 새삼 확인시켜준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출연: 이화선, 이현진, 나지훈, 오신영, 최정원, 김혜미, 양소영, 이상엽, 신혜수, 장예성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