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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자들의 맹목적 믿음 속에 똬리 튼 '불안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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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자들의 맹목적 믿음 속에 똬리 튼 '불안심리'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71)] 현대판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극단적인 극우 정치세력들이 전쟁도 불사하는 잘못된 신념에서 출발했다. 지금 전 세계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절실하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극단적인 극우 정치세력들이 전쟁도 불사하는 잘못된 신념에서 출발했다. 지금 전 세계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절실하다. 사진=로이터
권력 3위인 미 연방 하원의장이 같은 당내 소수 초강경파에 의해 해임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최근 미국에서 일어났다.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 통과는 234년 미 의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 정치 평론가들은 정치가 갈수록 양분화되는 가운데 소수 극단주의자들이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다수를 뒤흔드는 미국 정치의 불안한 현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초강경파에 휘둘리는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현실이 아니다. 최근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극우 세력의 충돌로 보는 것이 중동과 세계 정치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도 타협을 우선으로 하는 온건주의 정치 세력이 있지만, 이들은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극우 세력에 밀려 정권을 잃었다. 그 후 득세한 양쪽의 극단적 극우 세력들이 결국 전쟁도 불사하는 비극을 연출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 정치에서도 낯선 광경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여당과 야당의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의 본질인 타협과 양보를 통한 통합을 이루기보다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이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인 방안을 구상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맹종하고 그 안녕을 지키려고 한다. 이들은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고 자기 패거리들을 모아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책략을 꾸미는 잔재주에만 열중하고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극단적 무리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정치판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불안감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 지켜줄 우상 만든다


왜 중도적 성향의 온건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과격한 극단주의자들의 증오에 찬 거친 목소리만 들리게 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심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계 각국의 정세가 불안하다는 간접적인 증거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믿지 못하면 불안해진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믿을 때만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이 불안감은 나이에 관계없이 한평생을 통해 나타난다. 그리고 이렇게 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줄 우상을 만든다. 그리고 그 우상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고 한다. 이 현상을 '우상숭배(偶像崇拜)'라고 한다.

우상숭배는 사전적 의미로는 "물질적인 것이 초자연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믿거나 추앙(推仰)하는 일"이다. 숭배의 대상으로는 나무나 돌 또는 뼈 등의 자연물로 초자연적인 존재의 형태를 만들거나 그것을 상징하는 형태로 만들어 섬기는, 이런 우상숭배 행위는 세계 거의 모든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존재'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자기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대상이 필요하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초자연적인 대상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그 대상을 만든다. 그리고 그 대상을 믿으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이런 대상을 '우상(偶像)'이라고 부른다.

우상은 상상의 존재이거나 나무나 돌뿐만 아니라 다양하다. 불안을 잊기 위해 자의적으로 만든 모든 대상이 다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쉽게 황금 또는 부(富), 물신(物神)을 절대시하며 재산이나 재물의 소유를 우상시하는 매머니즘(mammonism)의 지배를 받는다. 숭배 대상이 돈으로 바뀐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돈의 소유량에 자신의 힘이 달려 있다고 믿는다.

생존해 있는 사람도 우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다. 구약성서 '출애굽기(出埃及記)'는 이집트에서 토목사업 등에 혹사당하는 유대인들이 지도자 모세(Moses)의 영도하에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40여 년을 생활하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Canaan)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 내용은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Koran)에도 나온다. 이 과정 중에 모세는 시내(시나이)산에서 유대인들이 유일신으로 믿는 야훼로부터 '십계명(十誡命)'을 직접 받게 된다.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시나이반도에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던 유대인들은 모세가 보이지 않자 불안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단지 모세만을 믿고 생활 터전이었던 이집트를 떠났는데 앞장서서 민족을 이끌던 모세가 없어지자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그들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들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불안한 마음과 우상숭배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나이반도에서 유랑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인간 모세가 우상이 되었다. 모세는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모세가 사라지자 금송아지로 믿음의 대상을 바꾼 것이다. 실제로 이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고 유랑 생활 중에도 지켜준 것은 그들이 믿는 야훼 신이었다. 유일신 야훼가 모세를 통해 이들을 이끌고 지켜준 것이지만, 이들은 눈에 보이는 모세를 믿었던 것이다. 즉 금송아지뿐만 아니라 모세도 우상이었던 셈이다.

극단주의자들, 우상에 무기력하게 맹종…타협 '절대불가'

우상을 믿을 때 오는 제일 큰 피해는 자아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우상은 불안하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다.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상이 강력해야 한다.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상은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상이 강력해지려면 자신이 우상을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한다. 금송아지가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금이라는 귀한 물건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크기가 클수록 힘이 강한 것으로 느껴진다. 금송아지가 커지려면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금붙이를 모두 내놓아야 한다. 사실 유사시에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금이다. 하지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기 위해 그 귀한 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즉 우상은 자신이 가진 귀한 것을 희생해야 우상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 결과 자신은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빈곤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모세를 우상화하게 되면, 모세가 없어지는 순간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이 없어진다. 그래서 모세를 더욱 의지하게 된다. 모세도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고 그의 힘과 지혜도 유일신 야훼가 준 것이라는 사실을 진정 깨달았다면 야훼를 믿음으로써 자신들에게도 역경을 헤쳐 나갈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비록 불안하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려는 노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모세만이 자신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철저히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이비 종교의 폐해도 결국 인간에 불과한 교주를 우상으로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인간을 ‘구세주’로 믿는 것 자체가 교주를 우상화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진 재산 모두를 헌금으로 바친다거나 자신을 사이비 교주의 성적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키면서도 자신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교주와 한 몸이 됐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기조차 한다.

극단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우상으로 만든 대상에 무기력하게 맹종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지도자에게 맹종한다. 그리고 지도자에게 반대하는 상대를 인정하고 타협하려는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들에게 우상화된 지도자는 ‘절대선(絶對善)’이기 때문에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도 인정한다는 것은 신적인 지도자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전 세계에 만연 초강경파들, 이분법적 전체주의 사고 팽배


정서적으로 이들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청소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청소년들은 아직 자신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맞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패당(牌黨)을 지어 서로에게 의지하며 힘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힘이 제일 센 인물에게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동시에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몰고 없애려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온건한 노선, 즉 상대방도 나름대로 옳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들은 모든 사안을 동지와 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대변한다고 느껴지는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동일시(同一視)하게 된다. 우상화된 지도자와 자신은 하나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힘이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이 힘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지도자를 공격하는 것을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느낀다. 이들에게 지도자는 신(神)이기 때문에 흠이 없는 존재로 신성시하는 동시에 지도자를 보호하기 위해 극렬하게 행동한다. 신을 지키기 위해서 심리적으로는 순교(殉敎)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인간은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이 필요하다. 건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믿음의 대상과 자신은 독립적이며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경전은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오래된 약속’과 ‘새로운 약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약속은 서로 분리되고 평등한 관계 사이에서나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약속을 할 수 없다. 다만, 명령과 복종만 있을 뿐이다.

우상숭배는 미성숙한 믿음이다. 우상숭배는 대상의 문제이기보다 대상과의 관계 양상에 달려 있다. 믿음을 통해 더 강해지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성숙한 신앙이다. 대조적으로 믿음을 통해 더 약해지고 더 불안해지고 파괴적이 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우상을 숭배하는 미성숙한 신앙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