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관규의 모든 춤을 총칭하는 ‘관규춤’은 우리의 춤 정서를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는 ‘한량무’를 현시대 춘풍화무(春風花舞)로 이어간다. ‘관규춤’은 호방함과 섬세함의 남성 춤과 단아함과 내면의 강인한 여성 춤을 다양한 부채에 사연을 실어 춘풍화무에 담는다. 이날 공연은 춤 길을 함께해 온 동료, 비손무용단 제자들과 함께하여 소박하고 뜻있는 한국 전통춤의 현대적인 모습을 연출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강선영류)로 출발한 임관규의 홀춤은 왕과 왕비가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축원한다. 당대의 영남 대표 춤꾼 임관규 특유의 격조와 가볍고 절도 있는 사위와 디딤이 신명과 흥신을 자아낸다. 차별화된 춤은 경기도당굿을 바탕으로 낙궁, 터벌림, 섭채,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 도살풀이로 구성된 음악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중량감을 주는 춤은 탁월한 기량과 분위기를 창출하며 정중동의 미적 형식을 완벽하게 소지한다. 굵직한 천과 상궁 좌유경의 존재가 의미롭게 다가온다.



좌유경의 홀춤 ‘춘풍화무’(임관규류)는 김선호(대금) 정성수(아쟁) 임영호(장구)의 생음악으로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들과 산에 만발한 꽃의 향연을 연출한다. 여인의 단아함과 힘찬 기상이 동시에 구사되는 임관규류 ‘춘풍화무'는 한국의 전통을 되새기면서 고풍스러운 춤 정서를 뚜렷하게 담아낸다. 세기(細技)를 장착한 부채 여인의 절제된 기교와 담백하고 아름다운 춤이 공연장에 두루 퍼진다. 춤꾼 임관규에 대한 존중과 ‘춘풍화무’에 대한 몰입감과 여백으로 서니 더욱 사유에 가까운 감동의 춤이 되었다.
임관규의 홀춤 ‘맨손살풀이춤’(박금슬류)은 수건 없이 맨손으로 굴신을 얹어 역동성을 창출한다. 박금슬 선생은 개성적인 춤의 전형인 ‘맨손살풀이춤’으로 지역과 당대의 정서를 담보하는 춤을 추었다. ‘맨손살풀이춤’은 동작 하나하나가 힘의 조화에서 나오며 전통춤 가운데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면서, 춤의 극적 전개를 도모하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춤이다. 각인각색의 ‘맨손살풀이춤’은 수련의 정도가 드러나며 무사(舞師) 임관규가 음악과 하나 되어 춘 혼이 담긴 춤은 전형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유현진이 춘 홀춤 ‘진도북춤’(박병천류)은 장구(임영호) 꽹과리(정성수) 태평소(김선호)로 음악 편제를 바꾸어 푸른 여름의 감흥을 불러온다. 최저 인원으로 최고 효과를 내도록 만들어진 광무대 무대는 유현진을 경쾌하고 재주가 많은 춤꾼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잘 알려진 진도 지역의 북춤은 두레굿에서 농악으로 다시 춤으로 미학적 틀을 갖추고 있다. 이 춤은 두 손에 북채를 들고 북을 치면서 추는 쌍북채춤이며 왼쪽 채를 오른쪽 북면으로 연신 넘기면서 가락을 치는 다듬이질 사위 위주로 연행하여 열띤 호응을 얻어내었다.



‘거문고산조 청(淸)(임관규류)’은 한국무용가 임관규가 자신의 전통춤 전형을 직접 보여주며 춘 홀춤이었다. 판소리 득음을 위한 소리꾼의 처절한 수련 과정의 애환을 춤에 담아 중후한 소리꾼의 예술혼을 거문고의 청아한 소리와 어우러져 춤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남성 산조는 소리꾼의 고고한 자세와 깊은 학문적 수양에서 풍겨 나오는 품위와 사유의 깊이를 모르는 호기심이 담겨있다. 춤을 음미하는 공간의 차이에 따라 작품을 접하는 묘미가 달라질 듯하다. 춤은 복식과 사운드에 따라 호기심의 한 갈래가 되기에 충분했다.
최미나 홀춤의 ‘달구벌 입춤’(최희선류)은 장구(임영호) 꽹과리(정성수) 태평소(김선호) 3인과 더불어 ‘수건춤’이라고 하는 교방놀이 춤의 익숙한 전형을 보여준다. 영남 춤의 커다란 한 축인 달성 권번의 박지홍에서 최희선으로 이어지는 ‘달구벌 입춤’은 조심스럽게 흩날리는 수건과 활기찬 소고놀이의 허튼춤이 조화를 이룬다. 이 춤은 규모가 큰 극장에서 무리 춤으로의 확장과 색상을 떠올리면서 상상력을 가미하면 엄청난 역동성과 화려한 빛깔로 인간이 창조해 낼 아름다움의 상부를 맛보게 해줄 것이란 기대감을 부풀린다.



춤에 대한 의지를 보이며 마무리한 ‘입춤’(정명숙류)은 임관규를 비롯하여 최미나 좌유경 유현진이 마음을 같이하여 동료와 후학이 같이 춘 사인무이다. 김선호(대금) 정성수(아쟁) 임영호(장구)의 연주로 기본 춤을 바탕으로 짜인 즉흥무로 허튼가락의 음악에 맞추어 신축성 있고 유동적인 호흡의 유연성이 돋보이는 춤이다. 장단, 의상, 춤의 순서가 체계적으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호흡에 따라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춤이다. 무정형의 정형은 정형보다 더 질서 정연하다. ‘입춤’은 마음을 추스르는 춤이었다.
‘관규춤’으로의 짧은 산책은 「한량에서 춘풍화무로…」의 깊숙한 춤의 호흡을 느끼기에는 공연 시간이 짧아 아쉬움을 남겼지만, 정통 영남 춤의 적자를 만난다는 즐거움과 상상과 유추의 사유 시간을 제공하였다. 그의 춤은 모방을 시도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예술 춤의 정도를 보여주었으며 학문적 가치와 흥행 가능성을 듬뿍 담고 있었다. 광무대의 엄선은 적중하였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