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연대기(57)] 이남영(엘엔와이댄스그룹 예술감독, 이화여대 무용학박사) 편

'디디다-생동'은 고대 신화와 문헌의 집단적 무의식과 원초적 기억을 현대적 춤 언어로 재현한다. ‘구지가’, ‘해가’, ‘삼국지 위지동이전’ 등에서 추출한 몸의 고고학적 요소를 기반으로, 기록된 고대의 움직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한국춤의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형상화한다. 한국춤의 원형을 찾는 행위가 아닌 현재의 몸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몸을 찾는다. '디디다-생동'은 '몸의 고고학', 'Panopticon', '이음-다가서다'와 함께 그녀의 최애 안무·출연작이다.
학구적 춤 전통을 이어가는 이남영의 '몸의 고고학'은 신체에 축적된 기억과 습관의 층위를 푸코의 '고고학적 방법론'으로 해체·재구성하며 신체 내부의 역사성과 감각을 드러내었다. 'Panopticon'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근거하여 ‘시선’과 ‘감시 권력’이 인간의 신체와 정동에 미치는 영향을 무용화했다. '이음-다가서다'는 초연결 사회와 디지털 시대의 ‘현대적 모빌리티’에 주목, 물리적·심리적 거리와 소통의 가능성을 동시대적 움직임으로 탐색하였다.






안무가는 문헌 속 움직임을 조사·연구하여 신화적 인간의 존재 방식과 감응의 원리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디디다-생동'은 천지인에 걸친 신화적 인간의 생명력과 존재의 울림을 춤으로 표현해낸다. 신과 인간, 대지와 몸, 무의식과 기억이 교차하는 무대로서, 과거의 수행적 몸짓이 오늘날의 동시대적 감각으로 다시 출현한다. 이남영은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문사철을 통합해 몰입감의 작품을 연출, 춤추는 몸의 고고학적 지층과 기억의 심연을 드러내 보인다.
'디디다-생동'에서의 움직임은 문헌의 ‘디딤’, ‘굴림’, ‘덩실덩실’, ‘너울너울’, ‘도약무’, ‘원무’ 등의 동작소에서 출발한다. 이 움직임들은 해체와 조립을 통해 재구성되며, 무게 중심을 디딤과 발의 울림, 손짓 등이 반복되며 신화적 질서와 현대적 안무 사이의 긴장을 형성한다. 몸은 유기적 흐름 속에서 생명의 공명을 전하고, 무용수들은 분리되지 않은 집단적 에너지로 연결된다. 현재적 몸의 아비투스를 만들어낸 신화의 텍스트에 나타난 동작소를 탈구축한다.
이남영 안무가는 '디디다-생동'을 구성하면서 조사·연구에 바탕한 움직임 추출, 놀이적 재배열, 신화적 수행의 재해석이라는 세 단계로 구성한다. 시작은 고대의 디딤과 대지를 울리는 움직임에서 출발하고, 중간에는 집단적 원무와 반복적 도약을 통해 생명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후반부에는 상하 동작의 교차와 공간 점유의 변화, 신과의 교감을 상징하는 상향 동작이 등장하며, 집단의 에너지가 하나의 생명력으로 수렴되는 구조로 신화의 무도(舞蹈)를 이룬다.
우영선이 담당한 음악은 ‘무음’, ‘침묵’으로 무용수의 ‘몸의 울림’ 자체에 집중한다. 김민수의 조명은 신체의 실루엣을 강조하여, 춤추는 몸을 하나의 감각적 존재로 드러낸다. 이는 무대 위에 현존하는 신체의 질감과 에너지, 움직임의 밀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 조명은 움직이는 신체 그 자체의 내재적 감각성과 리듬을 돋보이게 하며, 작품의 물리적·정서적 공간성을 구축한다. 신체와 공간이 침투하며 생성하는 ‘지각의 장(場)’으로서의 무대 환경을 구현한다.
강민주의 의상과 소도구는 특징적인 장면에서 긴 천이나 막대, 방울과 같은 소도구를 등장시켜 고대 제의의 동작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일상적 현대인의 의상과 이질적인 색감들이 함께 등장함으로써, 지금 이 시대의 몸들과 고대적 상징 간의 이질성이 더욱 강조된다. 이 대비는 과거의 신화적 움직임과 현재의 일상적 신체 사이의 틈새를 두드러지게 하며, 무대 위에서 시간의 층위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놀이나 유희가 재배치되는데 일조한다.






'디디다-생동'에서 대표적 상징 및 해석 요소로서 1)디딤과 대지: 인간과 땅의 감응을 상징하며, 생명과 울림의 원천 2)원무(圓舞): 집단적 리듬과 공동체적 의지의 시각화 3)상하 운동: 신성과 인간, 대지와 하늘 사이의 통로를 형상화 4)놀이화된 동작: 신화의 수행성과 일상적 몸짓의 교차를 통해 탈맥락화된 고대 몸짓의 현대적 재구성 5)고고학적 탐색: 몸에 축적된 과거의 동작 기억을 ‘수행적 몸의 글쓰기’로 전환한다.
'디디다-생동'은 7월, 일본 시나가와구 큐리안 구립문화회관에서 '신화의 무도(舞蹈) : 디디다-생동'으로 초청공연을 갖는다. 이남영은 비주류적이면서도 미학적으로 날카로운 감각, 예술적 독립성과 감성적 밀도를 가진 장르를 선호한다. 그녀의 안무작들은 나름의 문제의식과 감각적 실험을 동반하며, 오늘의 이남영을 이룬 축적의 기록이자 미래의 작업을 예비하는 중요한 전환점들이다. 예술가의 정체성과 궤적을 이룬 핵심적 구성 요소이다.
이남영의 꿈은 하나의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발표된 작품들로 한국춤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전환 시키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춤이 동시대 예술 담론 가운데, 보다 주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위치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남영에게 무용은 미학적 실험이자 문화적 발화이며, 그 변화의 실마리를 만드는 예술적 실천이다. 그녀가 대중적인 몸짓으로 조금만 더 다가가도 춤판은 달라질 것이다. 운명은 그녀를 강직하게 만든다.
(출연: 이혜인 최시울 최진한 우다윤 김예빈 김서연)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 예주은·잔나비와 묘한 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