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서영님 안무·출연·예술감독의 '여제의 길', 전설로 익어간 전통춤

글로벌이코노믹

서영님 안무·출연·예술감독의 '여제의 길', 전설로 익어간 전통춤

구고무(이숙향류)이미지 확대보기
구고무(이숙향류)
서영님의 춤은 화작(畵作)이었다/ 뎃상인 듯 도자기를 빚는 듯/ 역사와 전설이 고운 사위와 디딤으로 쌓여/ 아득히 신화의 눈물로 반짝거렸다/ 세월은 버드나무 끝에 고희를 부르고/ 그리움과 사랑의 길 위에/ 일관되게 품격을 유지하는 춤/ 들뜸을 낮춘 차분함 속에 열정 쏟아내며/ 전설의 춤은 숙성을 거듭하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피어난 춤/ 두루마리 길게 편 그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청량한 바람 시처럼 피어나도록/ 명화(名畵) 만난 추억을 불러와야겠다

8월 24일(일) 19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약당에서 님무용예술원·은방초춤보존회·관성묘유지재단 주최, 예원학교 총동문회·서울예술고등학교 총동문회·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메세나협회·NOROO 후원, 서영님 안무·출연·예술감독의 서영님(Suh Young Nim)의 인생춤 70(1955~2025)에 걸친 ‘서영님의 춤, 그향기 2025 - 여제의 길'(2025)이 ‘그리움과 사랑으로’라는 부제를 달고 공연되었다. 사회는 작가 이병준, 총연출은 연출가 이영일, 의상은 그레타 리가 맡았다.

이번 공연에 진설된 춤은 ‘장구춤’, ‘북과 그 여인’(진도북춤), ‘청룡신검무’, ‘회상’, ‘5인 살풀이, 화음’, ‘파문’, ‘장단의 결, 몸의 선율’, ‘구고무’(이숙향류)에 이르는 여덟 가지 춤이었다. 이 가운데 서영님은 ‘장구춤’, ‘회상’, ‘구고무’(이숙향류)를 홀 춤으로 연행(演行)하였다. 서영님은 세월을 익히면서 고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짓듯 스승의 춤과 정신을 오마주하였다. 자신의 향으로 춤을 지으면서, 그녀는 멋과 맛을 두루 지닌 격조의 춤을 견지해 왔다.

여제(女帝)는 춤의 신전을 지키는 여사제(女司祭) 의미를 중첩한다. 그 길 위에는 존경의 대상인 스승과 사랑의 제자가 연결되어 있다. 그녀의 춤은 장구의 속살처럼 붉게 타올랐다가 신비감 창출의 춤 선으로 미학적 성취를 보이면서 희로애락에 걸친 구고무에 이르러 해탈로 절정의 미감을 드러낸다. 맨손, 수건, 양 채가 부리는 춤은 현실감을 부르는 미학적 격상의 춤꾼들 가운데 서영님을 우뚝 서게 만든다. 그녀의 풍부한 상상력에 기반한 춤 기교는 독창적이다.
제자들의 성장을 조망하는 작업은 스승의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계절을 위한 촉수를 잃어버리고 자연광에서 차단되어 춤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은 예인들의 춤이다. 스승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는 일은 영광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다섯 갈래의 춤을 선보인 대다수 서울예고 출신의 무용수들이 높은 산의 명무인 스승 서영님, 대선배 서영님의 명성을 드높이는 재기에 넘치는 춤 재능으로 조화로운 어울림의 춤을 보여주었다.

구고무(이숙향류)이미지 확대보기
구고무(이숙향류)
구고무(이숙향류)이미지 확대보기
구고무(이숙향류)
구고무(이숙향류)이미지 확대보기
구고무(이숙향류)
구고무(이숙향류)이미지 확대보기
구고무(이숙향류)

‘장구춤’(조용자류) ; V를 대칭한 시각적 비주얼의 크림슨 타이드, 한강수타령에 맞춘 비스듬한 장구, 악가무가 강약을 주조하며 한 몸을 이룬다. '전통예술 복원 및 재현사업'(2021)의 일환이 된 조용자 장구춤이 복원된다. 노련한 전통춤 조련사 한성준(1874~1941)을 이어 정인방(1926~1984), 조용자(1924~미상), 은방초(본명 은종협, 1930~, 시카고 거주)를 거쳐 현재 서영님의 장구춤으로 이어진다. 현대적 미감의 전통춤 창작무 표현에도 탁월했던 조용자를 이음한 서영님의 춤은 단순한 기교적 응용뿐만 아니라 춤 작동 원리에 미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상급 유사성이 도출되었다.

‘회상’(은방초류 살풀이춤) ; 전통춤을 깊이 연구한 대표적 신무용가 은방초는 전통춤의 혼과 기교를 담은 ‘회상’을 서영님에게 전수한다. 기교와 철학에서 전통춤 최고의 화사를 담은 이 춤은 우리 춤으로 이루고자 하는 모든 세기(細技)적 다양성을 소지하고, 궁극에 이르러 무용수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예술춤이다. 여기에 보태지는 의상은 문화적 유전자를 인지하는 한 축이 된다. ‘회상’은 당시 한국무용협회로부터 명작무 제15호(2018)로 지정받았다. 자신감이 배어 나오는 서영님의 ‘회상’은 예술적 가치와 대중의 반응이 합일되어 그녀가 문화적 전통의 형성자임을 입증하고 있다.

‘구고무’(이숙향류) ; 편의성, 이동성, 경제성으로 인해 하프의 운명과 동맥의 ‘구고무’는 서영님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구고무’는 주만향-김문숙-이숙향-서영님 계보의 춤이다. '서영님 춤, 그 향기'(2005)에서 초연된 이 춤은 서영님만의 북의 리듬에 북 사이를 넘나드는 역동성과 유연성이 돋보인다. ‘구고무’가 지니는 고품격 매력과 흥신이 보태져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타고(打鼓) 하는 가운데 흑장삼을 벗어 던지고 북을 치는 행위는 해탈의 경지를 연출하는 것 같다. 대중과 호흡을 공유하는 격조의 춤은 신앙과 이성을 하나의 범주 속에서 운영하는 진전의 현대적 모습이다.

박병천이 극찬한 ‘북과 그 여인’(진도북춤), 은방초의 ‘장검무’의 전통을 잇는 ‘청룡신검무’, ‘5인 살풀이, 화음’, 부채 운용의 사랑과 별리의 ‘파문’, 장구춤 ‘장단의 결, 몸의 선율’이 절도와 조화의 도상학을 연출한다. 스승 서영님은 제자들이 써낸 몸시(춤)를 옹호하고 격려한다. 조안무(김미영 성균관대 무용학 박사, 김명신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졸업, 정명훈 세종대 박사), 지도(김유미 세종대 박사, 유채연 세종대 박사 수료, 최혜진 한예종 전문사 수료, 황시예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를 비롯해, 서울예고 출신의 출연진(김관지, 김서연, 박규리, 박준섭, 박채린, 배서연, 손무경, 이지현, 이채원, 이현승, 임재서, 정예은, 최승은, 황해원)이 진정성 있게 '여제의 길'에 춤의 교양을 이룬다.

장구춤(조용자류)이미지 확대보기
장구춤(조용자류)
장구춤(조용자류)이미지 확대보기
장구춤(조용자류)
장구춤(조용자류)이미지 확대보기
장구춤(조용자류)
회상(은방초류 살풀이춤)이미지 확대보기
회상(은방초류 살풀이춤)
회상(은방초류 살풀이춤)이미지 확대보기
회상(은방초류 살풀이춤)
커튼 콜(사진 제공 장석용)이미지 확대보기
커튼 콜(사진 제공 장석용)

여제의 길은 그리움이다. ‘서영님의 춤, 그 향기’(2001)에서 발아된 그리움은 여왕 선덕의 위대한 사랑의 힘이 바탕이다. 해(2003, 2013)를 달리하며 찬사를 보낸 여왕은 수양의 대상이었다. 이제 제자들이 도반, 수양의 거울, 그리움이자 사랑이다. 그녀의 대표 스승은 1950·60년대 교육계·무용계를 풍미하며 국립무용단 창단 멤버(1962)로서 '별의 전설'(안무 송범)의 견우, '심청전'(안무 김백봉)의 심봉사, '원효대사'(안무 강선영)의 대한대사를 맡았던 은방초이다.

서영님은 예원중졸(1971), 서울예고졸(1974), 이화여대 무용과 및 동 대학원졸(1978, 1981), 2013년 세종대 무용학 박사(2013)의 학습 시대를 거친다. 그녀는 무용가·교육자로서 서울예고 교장 역임, 님무용예술원(2016년 개원) 이사장, 은방초춤보존회 이사장이다. 그녀는 은방초 춤의 미적가치 연구와 근대의 춤 유산인 조용자류 장구춤복원 사업에 몰두하며 정성을 쏟고 있다. 2022년 사단법인 님무용예술원이 발족되었고, 제12회 개인무용발표회 ‘서영님의 춤. 그 향기 2022’(4월 5~6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서영님의 춤. 그 향기 2025’(8월 2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를 이어간다.

서영님 안무·출연·예술감독의 '여제의 길'(2025)은 서영님이 몸으로 쓴 장엄 서사시이다. 열정의 사각 테두리에 담은 큰 뜻은 하늘의 영광과 대지의 평화를 간구하는 대화합의 몸짓이었다. 특히 ‘구고무’를 대단원에 두고 자신의 내부를 바깥에 내보이겠다는 의지는 울림과 함성으로 번져 나왔다. 서영님의 춤은 오래된 우물같이 깊고 시원하고 석류처럼 열정적이며 믿음을 주는 춤이다. 올해에 서영님이 보인 춤은 난향이 진동하는 예술춤으로 기능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영상=안웅철·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