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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안무의 '메모리', 지구 온난화가 던진 위기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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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안무의 '메모리', 지구 온난화가 던진 위기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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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안무의 '메모리'
제7회 SDP국제페스티벌(총괄기획·예술감독 홍선미)이 초청한 미국팀 유희라(Hee Ra Yoo) 안무의 '메모리'가 11월 2일(일) 5시 서강대 메리홀에서 공연되었다. 안무가는 기후 온난화가 자연과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그 위기의식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그녀는 하와이에 살면서 기후 온난화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변화, 새들의 멸종, 해수면 상승은 그녀에게 더욱 또렷이 다가왔다. 우리가 점점 지구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춤으로 번졌다.

'메모리'는 기상 해설자의 등장으로 시작되며, 차갑고 기계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무용수들의 긴장된 몸짓과 만나 인공적인 냉기를 만들어낸다. 비발디 사계 가운데 ‘겨울’ 독주의 선율 속에서 마무리되는 구조를 지닌다. 부드럽고 가늘게 이어지는 선율은 감성적인 전자 바이올린 소리와 결합한 시작과 끝의 명확한 대비는 시간의 흐름과 인간 경험의 유한성을 암시하며, 관객에게 서사의 개념을 음악적, 무용적 장치와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작품은 인간성과 자연성의 충돌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바닥의 깨진 거울 조각은 지구와 인간 사회의 파편화된 현실을 상징한다. 아나운서의 퇴장과 함께 등장한 3인무(Alicia Davis, Grace Ortega, Maddie Weber)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질서와 혼돈의 대비를 경험케 한다. 조명은 서서히 변하는 색감으로 ‘시간’과 ‘기후’를 암시한다. 푸른 냉 조명에서 붉은빛으로 전환되는 순간, 지구의 온도 상승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깨진 거울 조각에 반사된 빛은 불안정한 파편처럼 무용수의 몸을 비추며, 관객에게 ‘우리 자신의 반사된 모습’을 보여주는 효과를 냈다. 무용수들의 민첩하고 정교한 동작은 조직화한 사회 속에서 인간이 맺는 유기적 관계를 은유한다.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반복적이고 로보틱스 한 움직임은 현대인의 일상을 기계적·의례적 행위로 환원시키며, 관객에게 인간 존재의 습관적 자기중심성을 직시하게 한다. 군무는 인간이 선택한 삶의 방식과 생태적 결과를 성찰하게 한다.
깨진 거울과 죽어가는 새의 시각적 메타포는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강화한다. 깨진 거울을 마주한 무용수는 죽어가는 새를 상징하는 몸짓으로 지구의 비명을 표현하며,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선택의 결과를 비추는 장치로 작용한다. 죽어가는 새는 인간의 이기적 선택과 생태적 파괴의 상징으로, 관객은 무대 위 상징을 통해 현재 우리 삶의 반영을 마주하고, 그로 인해 야기된 균열과 상실을 직면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비발디의 음악이 울려 퍼지며 작품은 절정에 이르고, 거울은 인간의 초상,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온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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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안무의 '메모리'

전체적으로 '메모리'는 음악, 무용, 무대 미술을 긴밀하게 결합하여 현대인의 삶과 지구적 위기라는 복합적 주제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관객은 단순히 시·청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자기중심적 삶과 그에 따른 생태적 결과,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메모리'는 오늘날의 사회와 지구가 직면한 위기를 춤으로 전환함으로써, 비평적 사유와 감각적 체험을 동시에 촉발하는 의미 있는 성취를 보여주었다.

유희라는 광주 출생이며 이화여대 졸업, 국립발레단에서 국가대표팀과 호주 올림픽 체조팀에서 발레를 지도했다. 시드니 올림픽 후, 도미하여 뉴욕 대학원 재학 중에 무용단 ‘유 앤 댄서스’를 창단, 십 년 뒤에 상주예술가가 되었다. 뉴욕시에서 Steps on Broadway, Peridance, 조프리 발레 스쿨에서 발레를 가르쳤다. 대학에서는 Tulane대, 뉴욕 주립대 Brockport, 하와이대에서 교수직을 거쳤다. 그녀는 최근 신시네티대 컨설바토리대학(CCM) 교수로 임명되었다.

'메모리'는 교훈적, 도덕적 메시지를 넘어, 인간의 본질적 이기심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음악, 움직임, 상징의 조화가 맞물려 환경문제를 다루면서도 예술적 완성도를 견지한다. '메모리'는 기후 변화의 경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는 깨진 거울 속에서 ‘당신은 지금, 지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안무가는 시각적 상징, 음악적 구조, 움직임의 언어를 잘 엮어내며, 동시대 무용이 사회적 주제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