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7월 9일(목) 저녁 여덟 시, 성남아트리움대극장에서 ‘2026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 정유진·B.ART COLLECTIVE 주최·주관, 정유진 안무의 '우리의 속도'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이상(李箱)의 ‘오감도’(烏瞰圖)를 동시대적 시선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서 ‘지휘하는 이상, 관찰되는 우리’라는 현학적, 신비적 수사에 걸맞은 춤과 의미를 담아낸 작품이다. ‘오감도’는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열다섯 편의 연작시다. '우리의 속도'는 오감도 시 제2호를 바탕으로 짠 존재와 이름, 침묵과 여백의 난해한 작품이지만, 품격 있는 현대무용의 결을 보여주었다.
이상의 ‘오감도’ 제2호는 춤의 움직임에서 "아무도 끝내 부르지 못한 우리의 이름"은 하나의 존재론적 울림으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상의 시선', '나의 걸음은 우리의 속도가 되고', '좁고 긴 망원경' 같은 이미지는 현대적 불안과 집단의식을 잘 드러내는 움직임을 담는다. 사물을 설명하기보다 존재를 호명하고, 이미지를 절제하며, 여백을 통해 의미를 생성한다. 그 분위기와 미학이 살아있는 신문 연재본은 현재 맞춤법과 표기와는 많이 다르다. 몸 시의 움직임은 부지런히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세대와 존재의 연속성, 인간이 짊어지는 역할의 무게를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나의아버지가나의겨테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웨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웨드듸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원전) 이 시의 핵심은 "왜 나는 나의 아버지를 뛰어넘어 여러 세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며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이전 세대가 맡았던 책임과 역사까지 떠안으며 존재하게 됨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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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정유진 안무(‘B.ART COLLECTIVE’ 예술감독)의 '우리의 속도'는 인간의 불안과 대중성, 관계 단절을 넘어 보다 근원적인 ‘인간은 어떻게 생성되고 이어지는가’에 대해 사유한다. 프로그램북 표지의 OCR(문자인식)에 대한 호기심 위에 선언문 같은 움직임이 번진다. 처음에는 특정 고전이나 문헌에서 가져온 원문처럼 보이지만, 안무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는 기존 문헌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 새롭게 조합한 문자 이미지이다. 실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읽히지만 완전히 해독되지 않는 언어'를 통해 이상(李箱)의 난해한 시 세계와 인간 존재의 불완전한 해석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장치이다.
관객은 읽으려 하지만 끝내 완전히 읽을 수 없는 경험을 통해 작품의 질문 안으로 진입한다. 이 작품의 원안무는 서울무용제 우수상 '오감도: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2024)이다. 안무가는 우리는 모두 과거의 기억과 흔적 위에 존재하며, 예술은 상이한 삶과 경험이 만나 유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밝힌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우리의 속도'는 프로롤그(지휘하는 자, 이상), 에필로그(우리의 속도) 및 4장(1장: 빈페이지, 2장: 창조된 존재들, 3장: 시간을 넘는 환상, 4장: 미래의 이상)으로 구성된다. 무용극 '우리의 속도'는 인간 존재의 탄생과 순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융복합 공연으로 형상화한다. 작품은 "나는 어제를 품고 미래를 지휘한다."라는 존재론적 명제를 중심축으로 삼아, 시제가 교직된 시간의 결 속에서 인간이 끊임없이 갱신하고 생성해 가는 존재임을 성찰한다. 지휘자 '이상'은 시간과 존재를 직조하는 창조적 매개자이며, 등장인물들은 그의 지휘 아래 탄생과 변이를 거듭한다.
반복되는 복제의 질서 속에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는 순간, 서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아를 자각하기 시작한 존재는 사회적 규범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과거의 자신과 조우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새롭게 직조해 나간다. 마침내 그는 과거가 남긴 흔적을 넘어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이상'으로 거듭난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신체의 움직임과 영상, 텍스트는 시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해체하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환기한다. 기억은 현재의 위상을 형성하고, 현재의 선택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예비한다.
정유진 안무가의 '우리의 속도'는 움직임을 단순한 안무의 형식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 서로를 감각하고 지탱하며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신체현상학을 바탕으로 몸을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로 바라보며, 개별 신체를 넘어 여러 몸이 하나의 감각과 호흡을 공유하는 공동의 신체성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작품 속 무용수의 호흡과 작은 움직임은 다시 지휘자의 리듬과 방향을 변화시키며 움직임은 일방향적인 통제가 아닌 상호 생성과 공명의 과정으로 확장된다. 각각의 몸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감각을 이어받고 관계를 형성하며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완성해 간다.
이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한 사람의 몸이 무엇을 경험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삶과 시간을 하나의 신체적 호흡 속에서 함께 구현해 가는가이다. 무용수들은 개별 인물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과 시선, 리듬을 공유하는 하나의 집단적 신체로 존재하며, 움직임은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감각과 기억, 관계를 드러낸다. 서로를 기다리고, 붙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몸의 흐름은 결국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신체를 통해 드러나는 과정이며, 공동의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음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에 재학 중인 무용수이자 안무가, 작곡가인 조정익이 맡았다. 다양한 창작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적 언어를 구축해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국 전통악기와 신디사이저를 결합해 전통의 음색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한국적 리듬과 현대적 사운드가 교차하는 음악은 무용수들의 집단적 호흡과 긴밀하게 맞물리며 움직임의 흐름을 더욱 깊고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결국 '우리의 속도'는 '누가 누구를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는 서로의 몸과 마음을 통해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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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정유진 안무가는 "이 작품은 한 사람의 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몸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과 감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결국 포기하지 않는 몸과 마음의 연결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힘이며, 그 힘이 모여 우리의 속도를 만들어간다." 라고 말하며, 몸은 개인의 표현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의 방식이자 서로를 지탱하는 희망의 감각임을 강조했다.
프롤로그 | 지휘하는 자, 이상: 시간과 존재의 리듬을 조율하는 지휘자 '이상'이 등장한다. 그의 손끝에서 침묵하던 공간은 서서히 호흡을 얻고,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시간과 잠재된 가능성이 무대 위에 서서히 현현한다.
제1장 | 빈 페이지: 천장에서 드리워진 백지의 전지들은 아직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시간과 생성 이전의 존재를 은유하는 무대 풍경을 이룬다. 이상은 이 비어 있는 공간을 하나의 악보처럼 지휘하며 새로운 세계의 서막을 연다. 전지는 인간이 삶을 통해 새겨갈 기억의 표면이자 무한한 생성 가능성을 품은 존재론적 캔버스로 기능한다.
제2장 | 창조된 존재들: 보면대 사이를 가로질러 등장한 무용수들은 이상의 상상력과 예술적 의지로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지휘의 흐름에 공명하며 끊임없이 변주되고 확장되는 생명의 형상으로 호흡한다. 질서와 반복의 리듬을 따라 조직되는 신체의 움직임은 인간 존재가 형성되고 구성되는 생성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제3장 | 시간을 넘는 환상: 이상을 움직이게 한 또 다른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홍을 비롯한 여성 인물들은 현실과 기억, 욕망과 환상이 교차하는 시간의 심연에서 출현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이상의 예술과 삶을 추동해 온 보이지 않는 원천이자 기억의 잔향으로 자리하며, 이상은 그들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응시한다.
제4장 | 미래의 이상: 이상은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열어가는 창조적 예술가로 거듭난다. 그의 몸짓에서 비롯된 창조의 에너지는 다시 무대 위 존재들에게 전이되고, 각각의 삶은 서로를 매개하며 하나의 공동체적 서사로 확장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하나의 시간성 속에서 조응하며 인간 존재의 순환과 공존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에필로그 | 우리의 속도: 이상은 무대에서 퇴장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존재들의 몸을 통해 지속된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과 변화를 반복하는 존재들이다. 작품은 끝없는 순환과 생성의 흐름 속에서 인간 존재가 공유하는 연결성과 공존의 의미를 깊은 여운으로 남긴다.
안무가 정유진(비아트컬렉티브 예술감독, 부산과기대 교수, 부암아트센터 대표)과 조안무 강혁(블루댄스시어터 대표)의 예술적 협업은 새의 시선으로 세계를 조망한 '오감도'의 미학을 2026년이라는 현재적 시간성으로 치환하며, 제1호를 비롯한 '13인의 아해'가 펼쳐내는 다층적인 춤의 변주를 통해 이상의 시어가 지닌 원형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향한 풍부한 상징과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무대로 완성되었다.
정유진 안무가는 '우리의 속도'를 창작하며 발견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과연 누가 누구를 움직이는가' 였다. 작품의 시작에서 이상(李箱)은 모든 존재를 지휘하는 창조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연습이 깊어질수록 안무가는 오히려 무용수들의 호흡과 시선, 멈춤과 움직임이 지휘자의 존재를 완성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지휘자가 무용수를 움직이는 것이아니라, 무용수 또한 지휘자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누구도 완전한 지휘자도, 완전한 연주자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이어받고 서로의 삶을 움직이며 함께 존재한다.
부모가 자녀를 만들지만, 자녀 또한 부모를 부모답게 만들고,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지만, 작품 또한 예술가를 변화시킨다. '우리의 속도'는 이상의 '오감도'를 통해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휘하고, 서로에게 지휘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말한다. '우리의 속도'란 한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삶이 만나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이 작품은 이상의 문학을 동시대의 몸과 시간의 감각으로 새롭게 번역함으로써 무용이 사유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입증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이형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