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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석대웅 스님] 이만희 ‘95세 노병’ 구속 수사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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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석대웅 스님] 이만희 ‘95세 노병’ 구속 수사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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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대웅 스님
지팡이를 짚고 법원 계단을 오르는 아흔다섯 노인의 모습을 뉴스로 접하며, 나는 오래도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신천지는 내가 믿는 길과는 다른 길을 걷는 종교이지만,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한 인간에 대한 연민까지 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행자의 눈으로 보면, 그가 누구든 자비심이 앞서는 것이 마땅하다. 신천지예수교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구속과 기소 소식을 접하며 나는 두 가지를 묻고 싶어졌다. 저 고령의 몸을 굳이 구치소에 가두어야만 했는가.

그리고 이번 수사는 애초에 정한 길을 그대로 걷고 있는가. 혐의를 부정하려는 것도, 사법부의 권위에 시비를 걸려는 것도 아니다. 법이 스스로 세운 원칙에 얼마나 충실한지, 함께 되짚어보고 싶을 뿐이다. 종교 간 화합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오래 몸담아 오다 보니, 다른 종교의 사정에도 자연히 눈길이 가게 된다.

아흔다섯의 몸, 굳이 구속해야 했나?


우리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삼는다. 구속은 도주와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마지막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원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적부심 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검찰은 결국 구속 상태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사법부의 판단이야 존중한다. 그러나 그 판단이 유일한 선택지였는지를 묻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증거 인멸을 막는 일이, 꼭 신체를 가두는 방법으로만 이루어져야 했을까.

이 총회장은 1931년생, 올해로 아흔다섯이다. 6·25 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이기도 하다. 90세를 훌쩍 넘긴 사람을 수감자 명단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번처럼 아흔다섯의 몸을 구치소에 두는 결정을 두고, 많은 국민이 이례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몇 해 전에도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재판이 상당 부분 진행된 뒤 보석이 허가되어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 재판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재판부가 고령인 피고인의 건강 악화와 증거 인멸 우려의 감소 등을 함께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으니, 사법부 스스로 그런 길을 한 번 연 적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도 그 길을 다시 한번 열어둘 수는 없었을까.

질병을 다스리고 매일 약을 챙겨야 할 나이의 사람을 차가운 방에 두는 일은, 유죄가 정해지지 않은 이상 이미 형벌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단한 법 이론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상식 아닌가. 전자장치 부착이든 주거 제한이든, 사법부가 다른 길을 한 번 더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것이 노승의 바람이다.

수사가 처음 걸었던 길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는가

이 대목에서는 조심스러워진다. 법률과 정치는 내가 평생 배운 분야가 아니다. 확신을 갖고 쓴다기보다, 신문과 방송을 접하며 든 소박한 궁금증을 옮겨보는 것에 가깝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신도들을 특정 정당에 집단 가입시킨 문제로 이 총회장의 구속영장을 받아냈다고,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신문에서는 이를 ‘정당법 위반 혐의’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뒤로는 교단 내부의 자금 운용이나 정관계 로비 의혹까지 함께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합수본이라는 기구 자체가 애초 통일교·신천지 등 종교단체의 금품 제공, 특정 정당 가입을 통한 선거 개입 등 ‘정교유착 비리’ 전반을 대상으로 출범했다고 하니, 이를 두고 엉뚱한 사안을 뒤늦게 끌어들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에는, 처음 구속의 근거가 되었던 일과 그 뒤로 새로 들여다본다는 일들이 어떻게 한 줄기로 이어지는 것인지가 또렷이 그려지지 않는다.

강제로 신체를 구금하는 처분 하나가 여러 갈래의 의혹을 함께 규명하는 발판으로 쓰이는 것 자체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폭이 어디까지인지, 법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수사기관이 한번 풀어서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최종 판단은 법과 정치를 깊이 아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 각 조사가 애초 혐의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있는 그대로 밝혀진다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의 물음도 자연스레 가라앉지 않겠는가.

화합을 향한 마음으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이지만, 이 총회장이 세계 평화를 위해 여러 나라를 다니고 필리핀 민다나오의 오랜 분쟁을 중재하는 데 힘을 보탰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 공로가 지금의 혐의를 덮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 했던가. 모든 일은 결국 이치를 따라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옛사람의 말이다. 사법부에 어떤 결론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늙고 병든 몸을 헤아리는 마음이 구금을 결정하는 그 순간에도 살아 있기를, 그리고 수사가 어디까지 뻗어가는지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은 설명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석대웅 스님 <세계불교 교황청 교정원장·대한불교 전통 조계종 부종정>


김양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pffhgla111@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