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냉방전력 2035년까지 1,600TWh 증가…지붕과 외벽이 새 전력전선
차열도료 시장, 햇빛반사율·색상·내구성·복합기능으로 격돌
차열도료 시장, 햇빛반사율·색상·내구성·복합기능으로 격돌
이미지 확대보기폭염은 지붕에서 전력망으로 번진다
2026년 7월 12일 오전 11시, 경북 포항과 경산에 사상 첫 폭염 중대경보가 발효됐다.
두 지역의 최고체감온도는 이틀 연속 35℃를 넘었다.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 뜨거운 공기를 쌓으면서 2008년 폭염특보 도입 이후 처음으로 최상위 경보가 내려졌다.
더위는 봄부터 시작됐다. 2026년 봄 전국 평균기온은 13.3℃로 역대 두 번째로 높았고, 6월 평균기온도 22.2℃로 평년을 웃돌았다.
기상청은 7월과 8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각각 60%로 전망했다. 7월에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도 제시됐다.
폭염과 장마가 한 계절에 겹치면서 지붕과 외벽은 강한 햇빛과 습기에 번갈아 노출된다. 폭염 대책도 냉방기를 늘리는 방식에서 건물로 유입되는 열을 줄이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노후주택과 어르신·장애인 복지시설 등 204곳의 옥상에 태양광 반사 도료를 시공한다.
지붕이 흡수하는 열을 줄여 실내 온도와 냉방 부담을 낮추려는 사업이다.
냉방 전력, 10년 뒤 1,600TWh 더 는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현재 정책이 유지될 경우 2035년까지 냉방용 전력 소비가 지금보다 1,600TWh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한 엘니뇨가 2026~2027년에 나타나고 이후 비슷한 규모의 고온 현상이 3년마다 반복되면 증가 폭은 약 700TWh 더 커질 수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냉방 수요를 줄이려면 에어컨 효율만 높여서는 부족하다.
냉방기는 실내에 들어온 열을 건물 밖으로 내보내는 장치다. 지붕과 외벽이 흡수하는 열부터 줄이면 실내로 유입되는 열이 감소하고 에어컨 가동시간도 짧아진다.
여름철 전력수요가 집중되는 시간대의 부담도 함께 낮출 수 있다.
지붕과 외벽에서 열을 줄인다
여름철 건물은 지붕과 외벽, 창문을 통해 많은 열을 받아들인다.
햇빛에 달궈진 철판과 콘크리트의 열은 실내로 스며들고, 창문을 통과한 일사는 바닥과 가구까지 데운다. 지붕과 외벽에는 차열도료를 적용해 흡수되는 햇빛을 줄이고, 창문은 일사 차단 유리와 필름, 외부 차양으로 열 유입을 막는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같은 표면 냉각의 효과는 해외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환경보호청이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반사 지붕을 적용한 냉방기 없는 주택은 실내 온도가 1.2~3.3℃ 낮아졌다.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에서는 가장 더운 시간대의 냉방 부하가 11~27% 감소했다. 특히 단열이 약하고 지붕 면적이 넓은 최상층에서 효과가 두드러졌다.
외벽도 냉방 부담을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친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10만여 차례 시뮬레이션한 결과, 반사 외벽은 캘리포니아 단독주택의 연간 냉난방 에너지를 3~25% 줄였다. 중형 사무실은 0.5~3.7%, 독립형 매장은 최대 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절감 폭은 기후와 건물 형태, 단열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지붕과 벽의 방향, 창문과 그늘, 냉방시간까지 반영한 건물별 계산과 시공 전후 측정이 필요한 이유다.
건물 색은 남기고 태양열은 줄인다
햇빛은 하나의 빛처럼 보이지만, 건물의 색을 결정하는 가시광선과 표면을 달구는 근적외선 등 여러 파장으로 이뤄져 있다.
차열도료는 이 가운데 근적외선을 반사해 지붕과 외벽이 흡수하는 열을 줄인다. 표면에 남은 열을 적외선으로 원활하게 내보낼수록 냉각 효과도 커질 수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건물을 흰색으로 칠하는 것이다.
흰색은 햇빛을 효과적으로 반사하지만 아파트와 학교, 공장 등 모든 건물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회색과 청색, 녹색, 갈색 등 기존 색상을 유지하면서 열 흡수를 줄여야 한다.
차열 기술의 경쟁도 흰색 중심에서 벗어나 색은 남기고 근적외선 반사 성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고 있다.
2022년 중국 저장대와 웨스트레이크대 공동연구팀은 기존 색 지붕의 위와 아래에 기능이 다른 투명 필름을 적용했다. 바깥쪽 필름은 근적외선을 반사하고 열을 방출했으며, 안쪽 필름은 지붕에서 발생한 복사열이 실내로 전달되는 양을 줄였다.
항저우 시험공간에서는 일반 지붕보다 내부 온도가 색상에 따라 2.3~5.8℃ 낮게 나타났고, 26℃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냉각 출력도 시험 조건에 따라 최대 63%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미지 확대보기또 다른 접근은 열을 흡수하는 색소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2026년 4월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된 에틸셀룰로스 이중층 코팅은 색소 대신 내부의 미세구조로 색을 구현했다. 연구진의 실험에서는 특정 조건에서 표면 온도가 주변 공기보다 최대 9℃ 낮게 측정됐다. 색상과 냉각 성능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빛의 배열을 조절한 사례다.
미국 연구진은 현장 적용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일리노이대와 미 육군 공병연구개발센터는 2025년 12월 실리콘계 고분자와 산화지르코늄을 혼합한 인쇄형 코팅을 발표했다. 태양광 반사율은 97.3%, 적외선 방사율은 96.9%로 측정됐다.
야외 소재 시험에서는 표면 온도가 주변 공기보다 최대 7.4℃ 낮게 나타났으며, 한 달간 진행한 소형 시험동 비교에서는 상용 흰색 반사 페인트를 적용한 시험동보다 냉방 전력 사용이 약 37% 적은 것으로 보고됐다.
색 지붕에 투명 필름을 덧대고, 미세구조로 색을 만들며, 코팅을 인쇄하는 방식까지 기술의 경로는 다르다. 목표는 같다. 건물의 색과 외관은 유지하면서 햇빛이 남기는 열만 줄이는 것이다.
지붕 위에 열린 도료 전쟁
한여름 공장 지붕과 아파트 외벽은 거대한 시험장으로 바뀐다.
경쟁은 더 이상 흰색을 얼마나 밝게 구현하느냐에 머물지 않는다. 짙은 색에서도 열을 줄이고, 비와 자외선을 견디며, 오랫동안 성능을 유지하는 기술이 맞붙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다양한 색상과 대규모 생산체계를 앞세운다.
PPG는 일반 검정 안료의 태양광 반사율이 약 5%인 데 비해 적외선 반사 검정 안료는 25~30%까지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셔윈윌리엄즈는 흰색뿐 아니라 검정·회색·녹색·청색·갈색 등 여러 색상에 반사 기능을 적용한 제품군을 개발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노루페인트는 차열과 방수 기능을 결합한 ‘에너지세이버 쿨루프’를 공급하고 있다. KCC의 ‘스포탄 상도 에너지’는 미국 쿨루프평가위원회 인증을 바탕으로 복지시설 등에 적용되고 있다. 대형업체들은 생산설비와 전국 유통망, 기존 방수·재도장 시장을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두온에너지원은 대기업과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중소기업이 제품 규모와 유통망으로 정면 승부하기 어려운 만큼, 이 업체는 현장 조건에 맞춘 색상과 복합 기능으로 차별화를 택했다.
흰색은 햇빛 반사율이 높지만 옥상 이용자에게 강한 눈부심을 줄 수 있고, 건물 외관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업체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색상의 차열도료를 개발하고, 방수와 광촉매 기능까지 하나의 도막에 담았다.
이를 바탕으로 축사와 학교, 산업시설, 노후 옥상 등 열과 습기, 오염이 함께 발생하는 현장을 중심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왔다.
도료시장의 경쟁 구도는 뚜렷하다.
대기업은 색상 선택권과 공급망, 인증, 보증기간을 앞세우고, 두온에너지원 같은 중소기업은 특정 현장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를 복합기술로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이미지 확대보기50억 달러 시장, 2034년 최대 92억 달러
폭염 대응 수요가 커지면서 차열도료 시장과 기술 경쟁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
폴라리스마켓리서치는 세계 쿨루프 도료 시장이 2025년 49억7,082만 달러에서 2034년 92억11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사이트파트너스도 같은 기간 시장 규모가 51억 달러에서 80억6,000만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두 기관의 전망을 종합하면 시장은 9년 동안 약 1.6~1.85배 커지는 셈이다.
민간 시장조사기관마다 전망치는 다르지만 성장 방향은 같다. 폭염의 장기화와 냉방비 상승, 노후 건물 보수 수요, 건축물 에너지 기준 강화가 시장을 밀어 올리고 있다.
적용 범위도 지붕용 도료에 머물지 않는다. 외벽용 반사 도료와 창호용 일사 차단 코팅, 방사냉각 필름까지 경쟁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커지는 차열도료 시장, 승부는 장기 성능에서 갈린다
차열도료 시장이 커질수록 제품을 평가하는 기준도 까다로워진다. 시공 직후의 높은 반사율만으로는 실제 성능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열도료는 시공 직후 반사 성능이 가장 높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먼지와 매연, 염분이 표면에 쌓이면 햇빛을 되돌려 보내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자외선과 비, 반복되는 온도 변화는 도료의 수지를 약하게 하고, 바탕면이나 균열 틈으로 수분이 유입되면 도막의 들뜸과 벗겨짐을 앞당길 수 있다.
김종군 두온에너지원 본부장은 “강한 햇빛과 비에 장기간 노출된 뒤에도 성능이 유지되는 제품을 만드는 데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장기 노출에 따른 성능 변화는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중국 충칭대와 샤먼·쓰촨 건축과학연구기관,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지붕재 12종을 샤먼과 청두의 옥상 시험대에 설치하고 최장 32개월 동안 실외 노출에 따른 반사율 변화를 측정했다.
시간이 지나 먼지와 매연 입자, 염분 등이 표면에 쌓이면서 햇빛 반사 성능은 낮아졌다.
이를 6층 기숙사 최상층에 적용한 건물에너지 시뮬레이션에서는 새 쿨루프의 연간 냉난방 에너지 절감률이 샤먼 24.2%, 청두 26.3%로 나타났지만, 노화된 반사율을 반영하면 각각 15.4%와 10.5%로 줄었다.
시공 과정의 습도도 성능을 좌우한다. 서울대·성균관대·경기대·삼성전자 등 공동연구팀은 다공성 냉각 도료를 습한 환경에서 건조하면 햇빛을 반사하는 미세기공이 무너질 수 있다고 밝혔다.
2024년 5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일반 시편이 상대습도 45%에서 냉각 기능을 잃은 반면, 실리카 보강 시편은 60%에서도 성능을 유지했다.
이는 굳은 도료가 장마에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제조와 시공 단계에서 건조 습도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차열도료는 시공 첫날의 표면 온도보다 여러 차례 여름과 장마를 지난 뒤 반사율과 냉각 효과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폭염 취약 건물부터 기준을 세워야 한다
장기 성능이 중요해졌지만 국내 건축기준은 아직 시공 이후의 반사율 유지까지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현행 건축물 에너지절약 설계기준은 지붕과 외벽의 단열성능, 창호의 태양열 취득률 등을 평가하지만, 지붕 표면이 햇빛을 얼마나 반사하고 그 성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는지는 주요 의무항목에 포함하지 않는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2026년 시행된 2025 에너지코드에 따라 건물 유형과 기후구역별 적용 대상 저경사 지붕의 장기 성능을 관리한다.
적용 대상 저경사 지붕은 3년 경과 후 태양광 반사율 63%와 열방사율 75% 이상을 충족하거나, 대체 기준인 태양광반사지수(SRI) 75를 적용한다. 시공 당시의 초기 수치가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 남아 있는 성능까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학교와 복지시설, 노후주택, 공장 등 폭염에 취약한 건물부터 장기 반사율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사비 지원과 인센티브 역시 제품의 초기 수치보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확인된 온도 저감과 에너지 절감 효과를 기준으로 연계하는 방식이 더 적절하다.
폭염 대응의 시작점은 건물 표면이다
태양빛은 건물 표면에 닿는 순간 일부는 대기로 반사되고, 나머지는 벽과 지붕에 흡수돼 열로 바뀐다.
도시의 여름은 이러한 에너지 교환이 수많은 건물에서 반복되며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폭염 대응은 실내에 쌓인 열을 냉방기로 빼내는 데 집중해 왔다.
앞으로는 건물이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열의 양을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붕과 외벽의 재료를 바꾸면 냉방 수요가 발생하기 전 단계에서 실내 열 유입과 전력 사용을 함께 낮출 수 있다.
차열도료의 경쟁력도 이 지점에서 갈린다. 높은 반사율과 다양한 색상, 방수·내구성, 장기간 유지되는 냉각 효과가 하나의 성능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험실에서 기록한 초기 수치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장마와 먼지, 자외선을 견딘 뒤에도 남아 있는 성능이 기술의 가치를 결정한다.
폭염에 취약한 건물의 지붕과 외벽을 에너지 관리 대상으로 포함하고, 실제 온도 저감과 전력 절감이 확인된 시공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