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60쪽 손바닥만한 소설집 "기분을 구름처럼 후 불고"(걷는 사람 /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 8 )를 손에 드니 새털 같고 정말 후 불면 날아갈 듯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분'은 안개와 구름 사이 어디쯤 있는 것 같고 '후 불고' 싶었던 마음은 정작 나를 향해 불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깨닫는다.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안상희는 이 작품에서 남녀 인물들의 발길을 경주 무덤, 익산 부여 빈 절터 등으로 이끈다. 마음을 토우처럼 땅에 묻는 인물들의 대화는 마치 빈 바다에서 잘게 부서지는 포말같다.
상실의 슬픔이 있다면 '풍경에 희석되어 느슨하게 퍼'지고 이별의 아픔은 '뿌연 김에 서린 형상처럼 가리어진다'는 작가는 굳이 고통이 있다면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도 길 끝에서는 자주 길을 잃'는다는 말로 아픔을 대신한다. "너는 지금 누군가를 네 기억으로만 쌓아 올리고 있잖아"라는 여성 인물 '루이'의 말에서 집착을 느낄 수 있어도 실낱처럼 가늘고 힘이 없다. 그래서 토우를 차례로 경주 앞바다에 던지듯 삶의 번뇌를 버린다. ('그때 마음을 바라보는 마음')
연작 두번째 소설 '빈터' . 석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남성 인물 '예'는 발굴에 빠진다. 발굴이란 존재를 잊은 땅에 자신의 근원을 보여주는 일이라며 훔친 여인 석상 하나를 품고 교외 유적지를 찾아 다니다 식당에서 한 사내를 만난다. 그 사내는 "그 석상에서 아직 집착을 버리지 못했냐"며 "그 석공은 여인을 통해 무엇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일갈한다. 예는 여인상을 흙에 묻는다. 그 땅은 언제나 빈터다.
세번째 소설 '이등변 삼각형'에서 "석등이 켜지면 무엇도 될 수 있는 당신,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나의 등불인 당신" 이라던 남성 인물 석우의 애틋한 마음에 아내 가언은 네번째 소설 '기분을 구름처럼 후 불고'에서 남편 석우의 부재를 '포크처럼 작고 딱 그 정도의 날카로운 그리움'이라 했다. 부재의 '빈 자리'에 상실의 고통이 들어갈 자리마저 허용하지 않지만 감정의 불균형은 대상포진으로 대체된다.
'우리 사이에 남은 이야기가 있었나. 모조리 탑이지'라는 가언의 독백은 "석우와 가언이 탑을 향한 의지든 처음 애틋한 마음을 향한 의지든, 각자가 원하는 허상만을 쌓아 현재의 결핍을 한층 증폭시키는 과정을 거쳐 왔음을 보여준다"(이대성 문학연구가)
다섯번째 소설 '우리는 너무 뒤늦게 슬프고'에서도 첫번째 소설의 여성 인물 루이는 '말린 잎으로 우린 차향처럼 시절만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희미해질 것이다'라고 '예'를 보며 생각한다. 루이는 '여전히 오늘은 아무런 결정을 하고 싶지 않'다.
안상희는 아마 공(空)으로 가는 길이 아슬아슬하다 한 것 같다. 빈터를 지나 석탑을 올리고 토우와 석상을 흙에 묻는 행위와 독백들이 허상의 줄을 건너 환영의 너울을 벗어나는 줄타기의 연속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소설 속 등장하는 노년의 천마총 해설사, 식당에서 만난 사내, 삼각형 노인 등이 전지적 관점에서 잠언 같은 말을 쏟아내는 건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읽는 몰입에 방해가 되고 다소 뜬금없는 설정같은 의아함도 든다. 그들이 차지하는 분량 또한 작지 않아 숨고르기가 아니라 주제 설명문 같다.
그럼에도 안상희 소설은 깨끗하다. 두 커플의 조용한 내면의 울림을 따라가며, 그것이 결국 허상이든 허상의 흔적이든, 공(空)의 참 의미를 천착하는 건 안상희의 미덕이고 저력이다. 이른바 트렌드를 벗어나면서 독자와 만난다는 건, 작가로선 아슬아슬 줄타기다. 그 아슬아슬함을 응원한다.
엄정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stoday@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