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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95세 피고 ‘구속 재판’ 인간 존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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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95세 피고 ‘구속 재판’ 인간 존엄 논란

기독교·불교계 인사들 “초고령 피고인 구속 반드시 필요한가”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는 기독교계 목회자들과 불교계 인사들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병 보석 허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한국기독교상생협의체·민주주의와 종교자유를 위한 공동연대이미지 확대보기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는 기독교계 목회자들과 불교계 인사들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병 보석 허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한국기독교상생협의체·민주주의와 종교자유를 위한 공동연대
95세 피고인을 계속 구금한 상태에서 재판하는 것이 과연 불가피한 일일까.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는 기독교계 목회자들과 불교계 인사들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로 종교적 배경은 달랐지만 법원을 향한 요구는 한 가지로 모였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만희 총회장의 병 보석을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총회장을 둘러싼 사회적 평가는 엇갈린다. 신천지를 둘러싼 논란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법정에서 이같은 사회적 평가가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혐의가 있다면 법원은 증거와 법률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유죄가 인정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도 사법부의 몫이다.
문제는 그와 별개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가’다. 구속은 형벌이 아니다.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피고인을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 등 재판 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활용되는 제도다.

그렇다면 구속의 필요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불구속 상태에서도 재판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구금으로 인해 피고인의 생명이나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 지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95세라는 나이는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된다. 물론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속을 면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 법 위에 있을 수도 없다.

다만 95세의 초고령자라면 법률적 기준만 기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상식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건강 상태와 치료 필요성, 구금시설에서 적절한 의료 처치가 가능한지, 불구속 상태에서도 법정 출석과 재판 절차 참여가 가능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구금이라도 이를 견디는 신체적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특히 90대 중반의 피고인에게 장기간 구금이 미치는 신체적 부담과 건강상 위험은 일반적인 성인 피고인과 동일한 잣대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더구나 재판은 단기간에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 1심 판단 이후에도 항소와 상고가 이어질 수 있다.

재판에서 잘못된 판단이 내려졌다면 상급심에서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하지만 초고령자가 구금 과정에서 심각한 건강 악화를 겪는다면 그 손실은 나중에 판결을 통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고령이니까 풀어달라’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다. 구속을 계속해야 할 구체적인 필요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필요성이 초고령 피고인의 건강과 생명에 미칠 위험보다 큰지를 상식과 법의 원칙에 따라 따져보는 일이다.

병 보석 역시 무죄를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구속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유죄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보석이 허가되더라도 재판은 계속된다. 피고인의 혐의 역시 법정에서 그대로 다뤄진다. 결국 법원이 결정해야 하는 것은 재판을 계속할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법의 취지와 인간의 존엄에 모두 부합하는가에 가깝다.

종교계의 호소가 재판부의 판단을 좌우해서도 안 된다. 여론 역시 사법적 판단을 대신할 수 없다.

재판부는 종교적 논란이나 사회적 호불호가 아니라 피고인의 건강 상태와 구속 필요성, 도주 및 증거인멸 가능성, 재판 출석 가능성 등을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동시에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보석, 주거 제한, 출석 의무 등 덜 침해적인 방법으로 재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오히려 이번 논란은 특정 피고인 한 사람의 보석 여부를 넘어 우리 사법제도가 초고령 피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혐의가 있다면 철저하게 심리하면 된다. 유죄라면 그 책임도 물으면 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95세라는 초고령 피고인의 건강과 생명이 불필요하게 위험에 노출돼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법을 지킨다는 이유로 상식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법의 엄정함은 구속의 강도만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만큼만 국가의 강제력을 행사하고, 그 필요성이 사라지거나 다른 방법으로 재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에 맞게 판단하는 것 역시 법치의 중요한 원칙이다. 특히 초고령자의 경우에는 법률 조항의 형식적 적용을 넘어, 그 결정이 실제 인간의 삶과 건강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까지 살피는 것이 사법부의 책임이다.

결국 국민이 지켜봐야 할 것은 이만희 총회장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다. 사법부가 ‘누구를 재판하느냐’가 아니라 ‘왜 구금이 필요한지, 구금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다.

그 판단은 이 총회장 한 사람을 넘어, 앞으로 초고령 피고인의 구속과 보석을 바라보는 우리 사법체계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

향후 95세 피고인을 마주한 사법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지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lwldms7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