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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尹대통령의 결단력에 경의 표한 기시다 총리, 한·일 정상회담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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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尹대통령의 결단력에 경의 표한 기시다 총리, 한·일 정상회담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도쿄를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가진 한·일 정상회담과 5월 7일 기시다 총리의 답방으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과거사와 관련 기시다 총리의 담론 변화다. 3·16 정상회담 직후 국내에서 가장 부정적이었던 평가는 기시다 총리가 일제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들 대신 한국 정부가 보상을 하겠다고 윤 대통령이 방일에 앞서 내린 결단에 상응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귀국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빈손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는데 기시다 총리는 5·7 정상회담 후 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공감을 나타낸 뒤 윤 대통령의 결단력에 경의를 표함으로써 3·16 정상회담 후 자신에 대한 한국 내 비판 여론을 누그러뜨리고자 나름 노력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5·7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저도 당시 어려운 건강 속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 6일 발표된 조치에 관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서 마음을 열어주신 데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더 나아가 “윤 대통령의 결단력과 행동력에 대해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윤 대통령을 평가했다.

두 번째는 기시다 총리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시 동해의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한국의 피해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3·16 정상회담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한국 국민의 공감대를 높이는 방향으로의 정책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공동 회견에서 5월 내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 시찰단의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리뷰를 받으면서 높은 투명성을 가지고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성의 있는 설명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전제하면서도 한국 내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총리로서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부연했다.

세 번째는 5월 22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의 초청으로 참여하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두 정상이 함께 참배하기를 기대하는 한국 내 여론에 기시다 총리가 부응했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5월 22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되는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자신의 초청으로 참여하는 윤 대통령과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공원을 함께 방문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찾아 참배하기로 윤 대통령과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같은 차이들을 가져온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이 4월 26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대중 패권 전략으로 추구하고 있는 대중 첨단기술 봉쇄를 위한 동맹 전략인 재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중국의 대만 강제 복속 위협 저지와 지난해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등 이중 봉쇄에 대한 참여를 약속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에게서 확보한 안보와 경제 부문의 성과가 컸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한·미 정상은 북한의 핵 공격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확장억제를 한·미 양국 간에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해 핵무기 공유 이전 단계로서는 최고 수준의 핵 협력을 한다는 ‘워싱턴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주요 첨단기술 전반에 걸쳐 기술 혁신을 위한 한·미 간 협력과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한·미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4·26 한·미 정상회담의 이 같은 결과는 기시다 총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신이 1월 13일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거둔 성과를 넘어선다. 당시 기시다 총리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 참여를 약속했음에도 미·일 핵협의그룹의 창설도, 미·일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의 신설도 끌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3·16 한·일 정상회담 때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의 결단에 진정성 있는 성의로 부응하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요인 중 하나 역시 자신이 윤 대통령보다 워싱턴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자신감에 따른 교만함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점에서 기시다 총리가 서울 답방을 예상보다 빨리 하기로 결정한 것도 4·26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는 글로벌 전략 파트너가 된 만큼 답방 시기를 더 늦춰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서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되어 양국이 앞으로 안보와 경제 분야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주목할 것은 한·일 정상이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봉쇄 전략인 재세계화 차원에서 양국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들과 일본의 우수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함께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이 분야에서 공조를 강화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과 ‘공조 강화’라는 객관적 표현들에 그 같은 함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우주와 양자, AI, 디지털 바이오, 미래 소재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한·일 간 협력 추진도 논의가 됐다고 공개했는데 이 역시 기시다 총리가 4·26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의 신설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예민한 현안을 의제로 다루지 않았다는 한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윤 대통령이 미·중 패권 전쟁인 2차 냉전이 본격화하는 시기에 한·일 간 협력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대승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책임을 정부가 맡기로 하는 결단을 통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이 같은 상황에 타격을 주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말도 안 되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보수 정당인 자민당의 기시다 정권이 독자적으로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만큼 12년 만에 복원되는 한·일 정상 셔틀 외교에서 해결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합의한 바대로 2차 냉전에서 미국의 글로벌 전략 파트너로서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에서 리더십을 갖고 일본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데에만 집착해 한·일 관계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 후 공동 회견에서 “과거사 정리가 안 됐다고 한·일 양국 관계가 미래를 향해 한 발짝도 내디뎌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중요한 전략적 인식인 것이다. 워싱턴에서 결국 한·일 중에서 진정한 글로벌 파트너를 선택한다면 결국 한국을 고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