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엔저로 인한 일본 내수경기의 파급효과가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내수를 소비하는 풍경도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요미우리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 자국민들의 소비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의 많은 소비로 인해 경제 성장률은 상승 그래프를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발표된 올해 4~6월 일본 국내총생산(GDP) 통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는 전분기에 비해 1.5%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런 수치가 3개월 평균 1년간 지속된다고 가정하고 연율로 환산하면 6%라는 상당한 수준의 성장치를 기록한 셈이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엔저의 대표적인 혜택을 받는 일본 자동차 수출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고, 외국인 관광객의 숫자가 늘어나 소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수출이 늘어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 현상으로 인해 일본 여행이 저렴해졌다는 판단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의 유입이 늘어나고 관광산업이 특수를 누리게 된 여파가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일본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내수는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개인 소비는 식비 등이 크게 감소하며 0.5% 줄어들었는데,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서는 2인 이상 가구의 월별 소비액은 지난 6월까지 4개월 연속 지난해 동기 대비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흐름은 실제 시장 상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도쿄 아키하바라, 일본 오사카 난바, 교토 등 대표적인 관광지에서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는 관광객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아키하바라 중고 게임숍 ‘트레이더 아키하바라’에 따르면 “미국인이나 유럽 등지에서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엔화가 비교적 저렴하다며 많은 상품을 한꺼번에 구매해 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인들은 식비도 절약하며 허리띠를 조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식료품 등 서민들의 주머니 물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으로, 여기에 더해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식량 가격 상승, 원유가 상승에 엔저에 따른 수입 물가 인상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식료품 회사들이 가격을 올렸다. 일본은 높은 밀 자급력을 앞세워 제빵이 저렴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밀 가격이 상승하면서 빵과 과자 가격 등이 계속 인상되고 있다. 빵이 주식 중 하나인 일본인에게 밀가루 원자재 가격 상승은 매우 치명적으로, 유명 제빵회사들은 “비싼 상품들이 팔리지 않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엔저로 인한 경제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해외 경제 포커스를 통해서 올해 하반기 일본 경제는 내수를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이 중심에는 외국인 관광객 회복과 관광 소비 증가로 인한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분기 일본 외국인 관광객은 2019년 2분기의 69.0% 수준까지 회복했으며,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액은 1조2052억 엔으로 2년 전(1조2673억 엔)의 9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밸런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다. 수십 년간 일본 경제를 떠받친 자국민들의 내수 소비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엔저로 인해 이어지는 기묘한 성장세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일본 증시 훈풍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엔저가 2023년 하반기 이후 증시의 발목을 잡는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엔저가 지속되면 기업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해 증시의 우상향도 막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4일 일본 거래소그룹 최고경영자인 야마지 히로미는 “엔저가 석유 등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의 비용 상승을 이끈다”며 “이에 따른 수입 비용 증가는 완성차 기업 등 세계 각지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제조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될 경우 엔저로 인한 수출 호황이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지를 대거 해외로 이전한 상황에서는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장사들의 낮은 시장가치, 지배구조 개선의 문제, 인색한 주주 친화 정책으로 인한 주가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지난 6월 일본 증시는 1990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33년 만에 33000선을 돌파했지만, 사상 초유의 엔저 현상으로 해외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며 수출기업 실적이 개선됐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내수의 경기 위축이 이어질 경우 해결되지 않은 엔저가 도리어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