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 생산량 감산으로 석유에 기반한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 전반이 충격을 받고 있으며, 이에 자칫 올해 경제 목표를 수정해야 할 위기에 처한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갈등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은 양국 사이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유가의 전반적 상승은 전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특히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기업 투자 위축, 소비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우디는 이런 고통을 보면서도 자국 경제 필요성을 앞세워 감산을 주도하면서 연말까지 이 기조를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사우디가 감산 기조를 연말까지 연장하려는 배경
사우디는 코로나 이후 글로벌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면서 석유 수요가 줄자 유가가 하락하면서 석유 판매에 의존하던 수입도 줄었다. 이에 재정난으로 각종 국가적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되자 석유 수요 감소에 대응해 감산을 주도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풍토병으로 전환되며 경기가 살아나면서 석유 수요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에도 사우디는 러시아를 비롯한 산유국과 협의를 통해 석유 수입을 늘리기 위해 고유가 기조를 유지하려고 감산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는 비전 2030 추진에 있어 막대한 건설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데 해외자본이 생각만큼 유입되지 않아 자체 예산으로 이를 충당해야 했다. 이에 자금 확보가 시급해 고유가 정책으로 석유 수입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또한, 사우디는 빈살만 왕세자의 금고 역할을 하는 아람코 주식 일부를 연말에 주식 시장에 상장한다는 소문이 있다. 고유가 기조가 유지되어야 아람코 주식 상장 과정에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연말까지 감산 기조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고민
미국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인플레이션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 감축으로 진정되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미국은 사우디의 석유 감산 연장과 유가 상승에 대해 사우디를 비난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를 하면서 유가가 급등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전략 비축유에서 2억 배럴에 가까운 원유를 매각했다. 미국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 비축유 매각이었다.
이런 매각 덕분에 유가 상승을 일정 부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길어지고, OPEC+의 석유 생산량 감축에 사우디·러시아의 추가 감산과 감산 기간 연장으로 유가는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 비축유의 추가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7월 기준으로 재고량은 약 3억2740만 배럴로 목표치인 7억 배럴의 46.7%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3억 배럴은 미국 석유 소비량을 감안하면 약 9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전략 비축유는 국가 안보를 위해 보유해야 하는 자원이라는 점에서, 추가 매각에 자칫 미국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은 바이든 정부의 이란 핵 협상 재개와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으며, 이에 사우디가 감산을 통해 미국에 보복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 여파를 극복하고 올해부터 전면적인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는 흐름이 되살아난 가운데 올해 후반에 연준이 금리 인상을 종료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이를 사우디의 감산이 망칠 수가 있는 국면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석유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2024년 대선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감산 수정 등 사우디 회유에 나서고 있지만, 사우디는 브릭스 회원국 가입 등 미국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 노선을 고수하고 있어 당분간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상태다.
사우디 석유 가치, 새롭게 부각
또 다른 문제는 디젤 가격의 급등이다. 5월 이후 디젤 가격은 40%나 올랐다. 이는 미국의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에는 중질유에서 나오는 디젤이 부족하다. 사우디 석유는 중질유가 많고, 미국산 석유에는 경질유가 많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 중 경질유와 중질유의 비중은 EIA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경질유의 생산은 늘고 중질유 생산은 줄고 있어 대략 3:1 비율이다.
중질유는 산업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디젤 생산에 적합해 세계 경제에 필수적 역할을 한다. 경질유는 주로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 생산에 적합하며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디젤은 자동차, 트럭, 선박, 기계 등 다양한 산업용 장비에 사용된다.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 감산은 디젤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디젤 가격 상승을 가속화한다. 그래서 디젤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상승하고 있다.
디젤의 가격이 상승하면 기업의 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디젤 가격 상승은 물류 비용을 증가시켜 소비자 물건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더 많은 디젤을 생산할 수 있는 중질유를 공급하는 대규모 공급업체가 거의 없다. 따라서 수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IA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상반기에 총 원유 수입 가운데 약 70%가 중질유였다. 주요 수입국은 캐나다,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다. 캐나다는 미국의 최대 디젤유 수입국으로, 미국의 전체 디젤유 수입량 가운데 약 30%를 차지한다. 멕시코는 미국의 두 번째로 큰 디젤유 수입국으로, 수입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에서 수입량의 약 10%를 수입한다.
결국, 미국은 사우디에서 부족한 일부 중질유를 수입해야 한다. 사우디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미국은 디젤 생산에 필요한 원유를 확보하는 데 곤란을 겪을 수 있다. 미국이 다른 출처 확보에 실패해 사우디 중질유 수입을 늘리면 다른 나라와 경합으로 가격이 올라간다.
이제 미국으로서는 캐나다에서 중질유 수입을 늘리는 방안, 사우디는 물론 OPEC+와 협상 강화, 전략 비축유의 추가 매각 검토, 석유 생산을 늘릴 수 있는 기술 개발 및 투자 지원 등으로 감산 충격을 헤쳐 나가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