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나 유럽 등 자율주행차 산업에 먼저 뛰어든 국가들은 최근 들어 자율주행차 상용화 단계에서 주춤하고 있다. 자율주행 수준이 높아질수록 각종 안전 문제와 그에 대한 책임 유무 등에 대한 논란도 커지면서 이미 충분한 기술을 갖춘 기업들도 상용화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과, 이를 활용한 수익모델 확보의 어려움도 서방 국가들의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후발 주자인 중국은 전기차(EV) 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아낌 없는 지원과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도입에 적극적인 기업들, 이들과 끈끈하게 연계된 학계가 똘똘 뭉쳐 자율주행 기술의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자율주행 기술의 급성장 배경으로 정부의 관련 인프라 투자와 광범위한 정보 지원을 꼽는다.
구글이나 테슬라 등 서방권 기업들이 추진 중인 자율주행 기술은 대부분 외부 도움 없이 차량 자체의 센서로 획득한 데이터와 내장 인공지능(AI) 컴퓨터에만 의지해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반면, 중국은 차량 자체 수집 정보뿐만 아니라 도로에 설치된 각종 정보 수집용 카메라나 각종 감시 및 모니터링 자산 등을 동원한 다양한 외부 정보까지 활용하는 방식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더욱 풍부한 정보를 이용하는 만큼 자율주행 기술의 성능과 안정성·효율성 등에서 서구권 방식보다 더욱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이는 사회 인프라 구축과 활용, 정보 취득·활용 분야에서 국가의 입김과 권한이 훨씬 강력하고, 서구권에서는 법적으로 민감한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 등도 필요시 무시할 수 있으며, 각종 사회감시 자산도 잘 갖춰진 중국이라는 국가 특성상 가능한 방법이다.
비용 및 투자적인 측면에서도 중국 정부가 아낌 없는 지원을 이어가고 있는데다, 12억 명에 달하는 인구 및 연간 2700만 대 규모의 거대한 내수시장은 그 자체로 규모의 경제를 통해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중국 자율주행차 분야 대표기업인 바이두는 이미 지난 2013년부터 자율주행차에 대한 연구개발을 시작했으며, 2015부터는 정해진 구역 내에서 사람의 도움 없이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4(L4)’ 단계의 자율주행차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 1월에는 개방형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를 선보이고 포드, BMW, 혼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의 중국법인들과 자율주행차 관련 협력을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 2021년 1월에는 지리자동차와 자율주행 자동차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직접 자율주행차 개발과 제조에도 뛰어들었다.
연간 투자 비용도 2013년 41억 위안(약 7550억원)에서 2023년에는 233억1500만 위안(약 4조3000억원)까지 늘었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 및 기술 개발에 힘입어 바이두는 이미 L4 자율주행 택시인 ‘로보택시’를 충칭과 우한·베이징에서 운행하고 있다.
바이두와 지리자동차 외에도 비야디(BYD), 니오, 샤오펑 등 전기차 전문 브랜드들도 자체적인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 및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5G 통신 기술과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능력을 갖춘 화웨이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자사가 보유한 5G 데이터 통신망과 클라우드를 제공하고, 자율주행용 AI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중국 자동차 업계 전체의 자율주행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베이징 칭화대학, 상하이 자오퉁대학과 퉁지대학 등 중국 내 기술 명문 대학교들도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 자동차 제조사들과 손잡고 산학협력 및 공동연구를 통해 자율주행차의 분야별 활용과 성능 향상을 위해 수많은 프로젝트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기업-학계의 탄탄한 협력 구조는 주로 민간기업 주도로 자율주행차 산업과 기술을 키워가는 한국 및 서방 국가들과 비교해 향후 중국의 자율주행 기술이 질적으로는 물론, 양적으로도 앞설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