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영구동토층 해빙…그레이트슬레이브 호·북극해 오염 우려
정부 '100년 동결' 계획에…지역사회 "미봉책 아닌 근본 해결을"
정부 '100년 동결' 계획에…지역사회 "미봉책 아닌 근본 해결을"

기후 변화 때문에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이 독극물이 유출될 수 있다는 공포가 인구 2만의 소도시 옐로나이프를 덮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현지 원주민들은 이 비소를 '잠자는 괴물'이라 부른다.
보도에 따르면 유출된 비소는 인근 베이커 크릭을 통해 세계 10대 담수호인 그레이트슬레이브 호로 흘러들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매켄지 강을 따라 1600km를 흘러 북극해의 보퍼트 해까지 도달하며 광범위한 생태계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경운동가들과 지역 활동가들은 자이언트 광산이 북극 자원 개발에 나서는 정부와 기업들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라고 입을 모은다.
◇ 금 채굴 50년의 독성 유산, 땅속에 묻히다
이 비소는 1948년부터 2004년까지 760만 온스(현 시세 약 27조5000억 원 상당)의 금을 생산했던 자이언트 광산의 어두운 유산이다. 금을 품은 유비철석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독성 삼산화비소 가스를 초기에는 굴뚝으로 배출했다. 이 때문에 주변 환경이 오염되고 소, 가축 등이 죽었으며 1951년에는 비소 오염된 눈을 먹은 원주민 유아가 숨지는 비극도 발생했다.
이후 광산 측은 비소 먼지를 모아 영구동토층 속에 얼려 보관하는 방식으로 바꿨지만, 기후 변화가 이 계획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광산 터에는 지하수 유입을 막기 위해 산업용 양수기 2대가 돌아가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 정부, 3조원 투입 '얼음 봉인'…"100년은 안전"
캐나다 정부는 현재 32억 캐나다 달러(약 3조2473억 원) 이상을 들여 대규모 정화와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캐나다 역사상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광산 복구 사업이다. 오염된 시설 철거, 광산 내부 안정화, 수처리 시설 건설 등을 진행하며, 핵심은 '서모사이펀' 기술이다.
858개의 금속 튜브를 지하에 설치해 이산화탄소 냉매로 16개 비소 저장실을 영구적으로 냉각시켜 비소를 얼음 속에 가두는 방식이다. 정화 책임을 맡은 캐나다 원주민-크라운 관계 및 북부 문제부의 나탈리 플라토 부국장은 "동결 방식에 매우 확신한다"면서 "비소를 처리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지하 깊숙한 곳의 미세 분말 형태 비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작업자 위험과 기술 한계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이 사업을 '영구 관리'라고 부르지만, 실제 목표는 최소 100년간의 안정적인 유지 관리다. 플라토 부국장은 가장 극단적인 온난화 예측에서도 동결 시스템이 고장 나면 대응할 시간이 수년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100년 뒤는 어쩌나"…영구 대책 요구 거세
그러나 이 계획은 '영구 관리'를 내세우면서도 최소 100년 유지를 목표로 할 뿐, 영원히 독성을 지닐 비소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거세다. 비소는 방사성 폐기물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분해되거나 독성이 약해지지 않는 영구 오염 물질이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광산 감독 위원회의 데이비드 리빙스턴 전 위원장은 "정부가 다른 해결책을 찾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단지 얼리고 잊어버리기를 원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면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정화 사업 자금은 2038년까지 확보했지만, 그 이후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친 구체적인 관리 계획은 아직 불분명하다. 위원회 소속 케빈 오라일리 전 준주 의원도 "정부 계획의 약점은 사람의 손길에 의존한다는 것"이라며 시스템 고장 가능성을 경고했다. 실제로 2023년 대형 산불 때문에 옐로나이프 주민 전체와 광산 작업자들이 대피했을 때, 지하수위 조절 펌프가 3주간 멈추는 아찔한 일도 벌어졌다. 정부 측은 당시 비소 저장실 침수는 없었으며, 펌프가 완전히 고장 날 때에도 침수까지 약 2.5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해명했다.
감독 위원회는 박테리아를 이용한 비소 분해(퀸스대 연구)나 비소를 유리에 가두는 유리화(워털루대, 던디 서스테이너블 테크놀로지스 연구) 같은 더욱 영구적인 해결책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일부 기술은 카자흐스탄이나 나미비아 등에서 소규모로 적용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플라토 부국장은 자이언트 광산의 막대한 비소량(23만7000톤)을 처리하기에는 기술과 비용의 어려움이 크다며 "아직 동결보다 더 나은 대안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리빙스턴 전 위원장은 정부 태도를 "이미 승인된 계획에 얽매이는 관료주의적 타성"이라고 지적했다.
◇ 원주민의 절규 "여긴 '독의 장소', 영원을 모른다"
자이언트 광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인근 원주민 공동체인 옐로나이프 데네 퍼스트 네이션이다. 이들은 광산을 '나가'(괴물)라고 부르며 꺼린다. 광미(폐기물 찌꺼기)에서 비소 먼지가 날아올 때면 당국은 주민들에게 실내 대피를 경고한다. 현재 광미 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라이노 스넛'이라는 화학 억제제를 뿌리지만 완벽하지 않다.
옐로나이프 데네의 프레드 상그리스 추장은 "그곳은 독의 장소"라며 "쳐다볼 수도 없다"고 분노했다. 그는 수천 년간 이어온 부족 삶의 터전이었던 사냥터가 황폐해진 현실을 개탄하며, 정부의 100년 관리 계획을 '영구 관리'라 부르는 것을 "영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과거에는 강에 물고기가 넘쳐 등을 밟고 건널 정도였지만 지금은 물고기조차 살지 못하는 땅이 됐다고 한다. 상그리스 추장은 "그들은 영원이라고 말하면서 100년을 의미한다. 그들은 영원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자이언트 광산 사태는 기후 변화 시대 북극 개발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경고다. 유콘 준주의 파로 광산, 이글 광산 등 캐나다 북부에는 장기 환경 부담을 남긴 폐광이 흩어져 있다. 캐나다 정부 추산 전국 오염 지역은 약 2만4000곳, 정화 비용은 100억 캐나다 달러(약 10조1480억 원)에 이른다. 노스웨스트 준주와 누나부트 광업 회의소의 캐런 코스텔로 전무이사는 "또 다른 자이언트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원 개발의 이면에 남은 독성 유산 처리와 기후 변화라는 이중고에 캐나다 사회가 놓여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