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새 4.7배 늘어난 수출액…이면엔 '소비세 회피' 밀수금 유출 의혹
커지는 경제 불확실성…안전자산 금 투자, 전년 동기 대비 2.7배 늘어
커지는 경제 불확실성…안전자산 금 투자, 전년 동기 대비 2.7배 늘어

8일(현지 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미국 관세 정책의 영향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이러한 현상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국제수지 통계를 보면, 지난 2월(속보치) 일본의 '비화폐용 금' 수출액은 2811억 엔(약 2조7273억 원)으로 10년 전보다 약 4.7배 늘었다. 특히 2024년 10월 이후 달마다 3000억 엔(약 2조9109억 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3025억 엔(약 2조9351억원)으로 1996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월 수출액을 시장 가격으로 바꾸면 달마다 20t에 이르는 규모로, 2023년 한 해 수출량(190t대)을 훨씬 웃도는 빠르기다. 주요 수출국은 미국·영국·홍콩·싱가포르 등이다.
◇ 치솟는 日 금 수출…전문가 "부자연스러운 규모"
마켓 애널리스트 도시마 이쓰오 씨는 "일본 안에서도 금이 모자랄 판인데, 이만한 수출은 자연스럽지 않다. 좁은 업계에서 대기업이 움직인 자취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날 '황금의 나라 지팡구(ZIPANGU)'로 불렸던 일본이지만 현재 주요 금 생산국은 아니다. 이번 수출이 크게 는 까닭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관세 정책이 꼽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금괴 수입에 관세를 매길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2024년 11월 미 대통령 선거 뒤 장사꾼과 금융기관들이 뉴욕 상품거래소 창고에 금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 수출 증가 배경엔 '밀수금'…소비세 노린 차익 거래
이처럼 국제 금 수요가 높아지자 일본 안 '재고'를 가진 이들이 금을 시장에 풀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일본 재무성 관세국은 "밀수한 금이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금을 수입할 때 소비세 10%를 매기는데, 밀수로 세금을 피한 다음 소비세를 더한 값으로 팔아 이익을 남기는 수법이 성행했다. 통계상 지난날 수입과 수출 차이보다 더 많은 금이 나라 안에 쌓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4년 4월 소비세가 5%에서 8%로 오르자 밀수 적발이 크게 늘었으며, 범죄 조직의 자금원으로 활용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처벌 강화와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한 밀수는 최근 금값 오름세와 일본 방문 관광객 증가로 다시 늘어 2024년(속보치) 금괴 밀수 적발은 493건, 압수량 약 1.2t으로 한 해 앞서보다 각각 2.3배, 4배 크게 늘었다. 그러나 금을 수출할 때 들여온 경로를 알려야 하는데도 유통 경로를 쫓기 어려워 밀수품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나쁜 경로로 손에 넣은 금이 수출되지 않도록 살피는 틀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 세계는 지금 '금 사재기'…불안심리에 투자 수요 2.7배↑
이런 일본의 금 수출 증가는 세계 금 수요가 크게 는 것과 관계가 깊다. 국제 조사기관인 세계금위원회(WGC)는 지난 4월 30일 2025년 1~3월 금 수급 통계를 발표하고, 이 기간 세계 금 투자 수요가 한 해 앞서 같은 기간보다 2.7배 크게 늘어난 551.9t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전체 금 수요는 1206t으로 1% 늘어 2016년 1분기 뒤 가장 많았다. 특히 현물 금 바탕 상장지수펀드(ETF)는 2024년 1분기 113t 순유출에서 올 1분기 226.5t 순유입으로 바뀌었다.
WGC의 모리타 다카히로 고문은 "최근 순유출을 보이던 ETF 잔고가 다시 쌓이며 전체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수요 증가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 물가 오름세와 경기 침체가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걱정, 세계 경제 둔화 우려 등이 겹쳐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금값이 크게 올라 보석류 수요는 무게 기준 21% 줄어든 380.3톤(2020년 7~9월 뒤 최저)이었지만, 값 기준으로는 9% 올랐다. 주요 금 수요국인 중국에서는 보석류 수요가 주춤한 반면 동전 수요는 무게 기준 12% 늘었는데, 모리타 씨는 "미·중 다툼이 심해질 걱정도 있어 보석류보다는 자산 가치를 지키기 좋은 것이 인기였다"고 말했다. 중앙은행들이 사들인 금량은 한 해 앞서 같은 기간보다 21% 준 243.7t이었으나, 지난 5년 분기 평균을 24% 웃돌아 꾸준한 수요를 보였다. 지난해 금을 가장 많이 사들인 폴란드는 올 1분기에도 49t을 사들여 가장 많았다.
◇ 국제 금값, 트로이온스당 3500달러 첫 돌파…안전자산 위상 굳건
금은 발행기관의 경영 상태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주식·채권과 달리 그 자체로 가치를 지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값이 꾸준히 올랐으며, 지난 4월 22일에는 뉴욕 선물 가격(최근월물)이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온스당 3500달러(약 487만8300원)를 넘기도 했다. 4월 들어 미국이 밝힌 맞관세와 미 행정부 경제·외교 정책에 대한 믿음이 줄어 달러 자산 가치가 떨어진 까닭도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런 세계 수요 증가와 일본 수출이 크게 느는데도 정작 일본의 지난 2월 금 수입액은 50억 엔(약 485억1550만 원)으로 10년 전보다 40%나 줄었다는 것이다. 일본 내 한 해 금 생산량(구리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 컴퓨터 재활용 등) 약 100t으로는 지금 수출 물량을 채우기 어렵다는 점에서 밀수품이 새고 있다는 의심은 더욱 커진다. 앞으로 금값 흐름은 투자자와 각 나라 중앙은행의 수요가 이어질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