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갈등과 중앙은행 금 구매 늘어 달러 강세에도 금값 오름세 이어져

역사적으로 금과 달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달러 값이 오르면 금값은 내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금이 달러로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같은 양의 금을 사는 데 더 적은 달러가 필요하다는 기본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2023년과 2024년에는 금과 달러가 동시에 오르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약 283만 원)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 달러 지수(DXY)도 강한 회복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달 금 옵션 거래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CME 그룹에 따르면 4월 금 옵션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16만 계약을 넘었으며, 이 중 주간 계약만 3만 5000개 이상을 차지했다.
금값은 최근 급등세를 보여 지난달 10일 온스당 3149.40달러(약 446만 원)까지 올랐으며, 같은 달 22일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금-달러 함께 오른 배경에는 글로벌 정세 불안과 중앙은행 구매 증가
보고서는 이처럼 금과 달러가 동시에 강세를 보이는 현상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과 중동 갈등을 비롯한 글로벌 정세 불안이 금과 달러에 대한 안전자산 수요를 동시에 높였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때에 투자자들은 일반적인 상관관계와 관계없이 이들 전통적 안전자산에 자금을 옮겼다.
둘째, 중앙은행들의 금 구매가 역사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 러시아와 여러 신흥 시장 국가들은 달러 자산에서 벗어나 다각화하려고 금 보유량을 크게 늘렸으며, 이는 달러 강세에도 금값을 떠받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셋째, 미국 중앙은행(Fed)의 강력한 긴축 정책에도 계속된 물가 상승 우려로 금은 여전히 매력적인 헤지 수단으로 여겨졌다. 보통 금리 인상은 금값에 불리하지만, 시장은 물가 상승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금에 대한 관심을 유지했다.
시장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금값이 현재 달러 강세보다는 실질금리, 물가 상승 우려, 시스템 위험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견해가 늘고 있다. 금과 미국 달러의 전통적 상관관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CME 그룹은 "미국 중앙은행이 긴축에서 완화로 방향을 바꾸면서 두 자산의 움직임이 더 전통적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서도 "현재 진행 중인 무역 다툼과 글로벌 정세 갈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금과 달러가 모두 안전자산으로 여겨질 때 둘 사이의 역사적 반비례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금 옵션 거래량을 보여주는 CME 그룹의 그림표에 따르면, 2023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금 옵션의 월간과 주간 하루 평균 거래량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달에는 약 17만 계약에 달하는 사상 최고 거래량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금 시장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이 보고서는 진단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