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정부가 소련 시절 운영됐던 국영 제철소 부지에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아 현대식 제철소를 신설하기로 했다. 새로운 제철소는 철강 수입의 3분의 1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6일(이하 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드미트리 나자로프 파키스탄 주재 러시아 대사와 하룬 악타르 칸 파키스탄 총리 특별보좌관이 이달 초 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칸 보좌관은 성명에서 “파키스탄은 투자에 있어 안전하고 번영하는 거점으로 국제사회가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닛케이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는 러시아와 공동으로 작업반을 구성해 신공장의 건설 및 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운영사도 선정할 방침이다. 익명을 요구한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은 닛케이와 인터뷰에서 “모스크바가 기술을 제공하고, 자금조달은 이슬라마바드가 마련하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신공장은 카라치 외곽 1만9000에이커 규모의 파키스탄제철(PSM) 옛 부지 중 700에이커를 활용하게 된다. 이 부지는 국영 기업인 PSM 소유다.
파키스탄신용평가기관(PACRA)이 지난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연간 철강 수요는 1120만톤인 반면, 국내 생산량은 조강·슬래브·스크랩을 모두 포함해 890만톤에 불과하다. 부족분은 26억달러(약 3조5000억원)의 수입으로 메우고 있다.
PSM은 지난 1973년 옛 소련의 지원으로 설립돼 1992년까지 소련 기술자들이 운영에 관여했으며 이후 2015년까지 파키스탄 정부가 운영해왔다. 그러나 기술 노후화와 부실 운영 끝에 누적 손실이 21억4000만달러(약 2조8800억원)에 이르자 폐쇄됐다. 당시 산업생산 상임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예비 부품 확보와 설비 유지보수 절차를 소홀히 한 점이 궁극적으로 공장 붕괴를 초래했다”고 미르자 막수드 전 노조 위원장은 밝혔다.
전문가들은 신공장이 파키스탄 경제에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기반 경제학자 니아즈 무르타자는 “신공장은 파키스탄 내 철광석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고, 철강·기계산업 생산 확대, 자동차 등 연관 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과 수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PSM 부지는 배수시설과 항만 연계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물류 효율성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 카라치 증권사 탑라인증권의 나시드 말리크 연구원은 “통합형 제철소가 구축된다면 철강 원자재 수입 의존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PACRA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1년간 파키스탄은 270만톤의 철강 스크랩과 290만톤의 반제품 및 완제품 철강을 수입했다. 반면 파키스탄이 보유한 철광석 매장량은 14억톤으로 추정되지만, 기술 부족으로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말리크 연구원은 “국내 철광석을 처리할 수 있는 설비가 마련되면 주요 산업에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 외화도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막수드 전 위원장은 “PSM의 설비는 1945년 소련 기술로 만들어졌고 현재는 완전히 노후화된 상태”라며 “신공장은 첨단 장비를 활용해 인력은 줄이고 전력 소비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PSM의 부채는 11억달러(약 1조4800억원) 수준이지만 자산 가치는 110억달러(약 14조8000억원)를 넘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막수드는 “PSM 자산 일부를 매각해 신공장 건설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며 “공장은 2년 안에 가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