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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北 김정은, 남한과 ‘정보전’서 우세 점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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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北 김정은, 남한과 ‘정보전’서 우세 점하기 시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 사진=로이터
북한과 한국이 무력 충돌 대신 ‘정보전’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BBC가 3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BBC는 “남북한이 기술과 확성기, USB, 라디오,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차단하는 비공식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북한이 외부 콘텐츠 유입을 막기 위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산 삭감으로 약화되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BBC에 따르면 남한 측은 국경 지대 확성기를 통해 K-팝과 여행, 자유, 민주주의 등을 주제로 한 메시지를 송출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국의 비정부기구(NGO)와 방송단체들은 USB와 SD카드, 단파 라디오 등을 통해 야간에 외부 정보를 북한으로 보내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인 통일미디어그룹(UMG)은 매달 남한의 드라마, 음악, 뉴스, 민주주의 교육자료 등을 담은 USB를 제작해 중국 접경 지역을 통해 북한으로 몰래 전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귤이 주는 삶(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과 가수 제니의 히트곡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백 UMG 대표는 BBC와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는 증언도 있었고 처음으로 꿈을 갖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북한 이탈 주민 단체 ‘리버티 인 노스코리아’(LiNK)의 박석길 국장은 “최근 탈북자 대부분이 외부 콘텐츠가 탈북 계기가 됐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2023년 말 보트를 타고 탈북한 강규리 씨는 “외부 TV 프로그램이 숨 막히는 북한을 떠나게 한 계기였다”며 “주변 친구들과 USB를 돌려보며 BTS나 남한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로 인해 남한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도 반격에 나섰다. 2020년부터 외부 콘텐츠 유통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고, 2023년부터는 남한 말투를 쓰거나 남한식 옷차림을 하는 것도 단속 대상이 됐다. 젊은 층을 감시하는 ‘청년단속반’이 생겨나 휴대전화를 확인하거나 길거리에서 옷차림을 지적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또한 2024년 말에는 북한 휴대전화에 남한식 단어 입력 시 자동으로 북측 단어로 바뀌는 검열 시스템이 탑재된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같은 기술은 “오웰식 통제”라고 BBC는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의 정보 차단은 고도화되고 있지만 미국의 지원은 오히려 줄고 있다. B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복귀 직후 VOA(미국의 소리)와 RFA(자유아시아방송) 등 북한을 대상으로 한 방송의 예산을 중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VOA를 “급진적이고 반트럼프 성향”이라고 비난하며 세금 낭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 VOA 서울지국장 스티브 허먼은 “북한 주민들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이었는데, 설명 없이 침묵하게 됐다”고 우려했다.

박석길 국장은 “제재, 외교, 군사적 압박 모두 김정은을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정보는 다르다”며 “장기적으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킬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BBC는 이러한 활동 대부분이 미국 자금에 의존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북한과의 긴장 완화를 중시하는 정당이 정보전을 지지하지 않아 한국 정부가 이를 대체하기도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는 국경 확성기 방송 중단을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그럼에도 박 국장은 “북한 당국이 주민들 머릿속에 쌓인 정보를 없앨 수는 없다”며 “기술 발전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이 정보가 북한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