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T에 따르면 미국은 오랫동안 생명과학, 물리학, 보건 분야 등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연구비가 대폭 줄고 외국 유학생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연구 인재들이 미국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 방갈로르에 위치한 국립생물과학센터(NCBS)의 라지 라더 교수는 최근 30여 명의 박사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로 계획을 조사한 결과 “미국에서 확정된 일자리를 가진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며 “미국은 세계 최고의 연구 생태계였지만 지금은 많은 학생들이 오스트리아, 일본, 호주로 향하거나 자국에 머물기로 했다”고 NYT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를 대상으로 외국인 유학생 입학을 전면 차단하려 하고 있는 가운데 이 학교에 지원된 30억 달러(약 4조1400억원)의 연구비를 중단 또는 보류한 상황이다. 존스홉킨스대는 정부 지원금 8억 달러(약 1조1040억원)가 끊긴 뒤 2000명 이상을 해고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신규 연구비 집행 속도는 지난 1990년 이후 가장 느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데이비드 호그 미국 뉴욕대 물리학·데이터과학 교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미국 과학은 끝장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외국 과학자들과 협력할 수 없게 되면 내가 하는 연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러한 영향은 단순히 미국 과학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독일 드레스덴공대의 디르크 브록만 생물·물리학 교수는 “미국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담한 발상을 실행하는 문화가 깊이 스며든 곳으로 이는 그 자체로 혁신의 원천”이라며 “그 특별한 분위기를 대체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과 호주, 프랑스 등의 정부는 미국 과학자들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 DESY(전자 싱크로트론) 연구소 가속기부문장을 맡고 있는 윔 레만스 교수는 “미국은 의료 연구와 기후 감시 분야 등에서 필수적인 파트너였기 때문에 미국의 이탈은 세계 과학계 전체에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은 외국인 과학자의 유입을 통해 자국의 과학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반너버 부시 당시 백악관 과학고문이 작성한 보고서 ‘과학, 끝없는 개척지(Science, the Endless Frontier)’는 미국이 외국 인재를 적극 수용할 때 더 많은 성과를 얻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분위기는 정반대다. 브록만 교수는 “다음달 노스웨스턴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학술 발표를 취소했다”며 “독일 외교부가 미국 여행주의보를 발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에서 더 이상 안전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