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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록, 텍사스 압박에 굴복해 3000억 달러 연금펀드 재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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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록, 텍사스 압박에 굴복해 3000억 달러 연금펀드 재진입

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후퇴 약속으로 2년 반 만에 투자 제재 해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로고. 사진=로이터
미국 텍사스주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에 반대하는 '보수 가치' 정책으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굴복시키며 미국 기업 지배구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블랙록이 ESG 투자 정책 후퇴를 약속하며 2년 반 만에 3000억 달러(408조 원) 규모 텍사스 연금펀드 투자 제재에서 풀린 것은 한 개 주 정부가 거대 금융기관을 압박해 정책 변화를 이끌어낸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7(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텍사스주 강력한 압박에 굴복해 ESG 투자 정책을 후퇴시키겠다고 약속하며 2년 반 만에 투자 제재에서 해제됐다.

텍사스주는 20228월 블랙록을 석유 산업 보이콧 혐의로 3000억 달러 규모 주 연금 및 투자 펀드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글렌 헤거 텍사스 주 감사관은 최근 블랙록이 투자 방식을 다시 검토하고 친환경 사업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한 것을 근거로 투자 재개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헤거 감사관은 "뜻깊은 승리"라며 "텍사스 방식이 기업과 정부, 미국인 개인이 에너지 부문을 보는 방식에 획기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휴스턴 아르테미스 에너지 파트너스 바비 튜더 최고경영자는 "세상이 바뀌었다""블랙록 같은 대형 금융기관은 세계 8위 경제 규모인 텍사스 시장에서 배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블랙록은 올해 초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자발적 글로벌 투자자 그룹인 '넷제로 자산운용사(Net Zero Asset Managers)'에서 탈퇴했다. 뱅가드는 이미 2022년 이 그룹을 떠났다.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은 이번 주 "포퓰리즘 세계에 살고 있고 소셜 미디어 영향력이 커지는 세상에서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주주 권리 제한하고 경영진 권한 강화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

텍사스주는 블랙록 제재를 넘어 기업 지배구조 전반에 손을 대고 있다. 주 정부는 지난해 복잡한 상업 분쟁을 다루는 자체 비즈니스 법원을 만들었고, 지난달에는 주주들이 기업을 고소하거나 이사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새 법률은 판사들이 이사회 신탁 의무 위반을 판단하는 것을 사실상 막고 있다. 대주주만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으며, 최고경영자와 이사들이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소송 자료로 쓰이는 경우도 제한했다. 변호사 수임료 지급도 제한된다.

이 법은 주주 투표에도 제한을 두고 있다. 대주주들에게 투표 방법을 권하는 글래스 루이스, 기관 주주 서비스 같은 위임장 그룹 제안에는 이제 표현된 견해가 ESG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우려에 물들지 않았다는 증명이 따라와야 한다.

텍사스주는 주식시장과 기업 소재지를 유치하는 명성도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3개 초기 증권거래소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텍사스 증권거래소(TXSE)라는 새로운 조직이 2026년 문을 열 예정이다. TXSE 짐 리 최고경영자는 텍사스가 "델라웨어 및 뉴욕과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휴스턴 깁슨 던 힐러리 홈스 파트너는 "기업에 우호적인 주로서 텍사스 분위기가 훨씬 밝아졌다""텍사스는 법적 확실성을 높이고 하찮은 소송 위험을 줄여 기업이 주를 본거지로 여길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사례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 기업 유치 효과 둔화에도 '보수 가치' 기조 지속

지난 10년간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 쉐브론, 찰스 슈왑, 테슬라 등 수백 개 기업이 본사를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옮겼다. 현재 텍사스는 포춘 500대 기업 중 캘리포니아와 거의 비슷한 수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본사 이전 기업 수는 202179개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줄어들고 있다. 주지사 사무실에 따르면 작년에는 24개 기업만 텍사스로 본사를 옮겼다.

아르테미스 에너지 파트너스 튜더 임원은 "한편으로 자유 기업과 열린 시장을 내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싫어하는 사업 방식에는 제재를 가하는 것은 모순적인 보수 행태"라고 지적했다.

텍사스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화 전쟁 문제 접근법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반석유, 반총기, 반이스라엘이라고 비난하는 기업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켄 팩스턴 텍사스 법무장관은 지난해 블랙록과 동료 자산운용사 스테이트 스트리트, 뱅가드를 상대로 이들이 "파괴적이고 정치화된 환경 의제"를 밀어붙이려고 석탄 공급을 줄이려는 담합을 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이 소송에 합류했다.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스티븐 페디고 도시개발 전문가는 "텍사스 정책이 바뀐 게 아니라 기업들이 텍사스 방식에 맞춰 변하고 있다""기업들은 시장에 들어가려면 규칙을 따라야 하는데, 많은 회사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