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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법학자들 "트럼프, 긴급권 남용....정당한 권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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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법학자들 "트럼프, 긴급권 남용....정당한 권한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종 국내외 사안을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광범위한 행정 권한을 행사하려 한 데 대해 미국 헌법학자들이 “법적 근거가 부족한 권한 남용”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 추방, 군 동원, 관세 부과 등 주요 현안에 있어 관련 법률의 취지를 벗어난 채 긴급조치를 남발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로스앤젤레스의 반정부 시위, 베네수엘라 갱단의 활동, 외국 무역의 위협 등을 거론하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다양한 권한을 동원하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방위군을 파견했으며 충분한 절차 없이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엘살바도르로 송환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지난달에는 외국 무역 관행이 “국가경제에 대한 위협”이라는 이유로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미국 법학자들은 이같은 조치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리야 소민 미국 안톤 스칼리아 로스쿨 교수는 NYT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근거 없는 가짜 비상사태를 선포함으로써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고 헌법과 시민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자국 내 와인 수입업체들과 함께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원 역시 잇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권 남용에 제동을 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베네수엘라의 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과’가 미국을 침투하고 있다며 1798년 제정된 ‘외국 적국인 법(Alien Enemies Act)’을 근거로 추방 명령을 내렸지만 연방지방법원 판사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앨빈 K. 헬러스타인 뉴욕 연방지법 판사는 지난달 “이주민들 속에 갱단원이 섞여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들의 활동이 침략이나 약탈행위에 해당한다는 근거는 없다”며 “마약 밀수는 범죄일 수는 있어도, 침략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트럼프가 임명한 스테파니 L. 헤인스 펜실베이니아 연방지법 판사는 반대 판결을 내리며 “이 갱단은 분명 약탈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전반적인 법조계 판단은 비판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이민 단속에 반발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를 “이민자 침공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며 군 동원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출생시민권 제도를 폐지하는 행정명령도 추진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백악관 수석보좌관이자 반이민 정책을 이끌고 있는 스티븐 밀러는 지난달 “하베이스 코퍼스(구금된 자의 심문청구권) 중단도 고려 중”이라고 밝히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법원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실행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학자들은 하베이스 코퍼스의 정지는 의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주리대 로스쿨의 프랭크 보우먼 교수는 “비상사태 권한은 선의의 대통령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지 모든 사안을 비상사태로 규정해 권력을 확대하라는 뜻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출생시민권 폐지를 추진하며 “전쟁이나 침략 상태에서는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서도 연방 항소법원 판사이자 차기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제임스 호 판사는 과거 “불법체류자 자녀들도 시민권 보호를 받는다”고 밝힌 바 있지만 최근 인터뷰에서는 “침략에 해당할 경우 시민권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해 입장을 바꿨다.

미국 헌법에는 침략 상황에서 주 정부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조항과 반란 또는 침략 시 하베이스 코퍼스를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이 조항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조치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크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긴급조치들과 관련해 아직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지만 과거 사례에선 긴급권 남용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철강 산업을 국유화하려 한 조치는 ‘영스타운 사건’ 판결에서 위헌으로 판시된 바 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로버트 잭슨 대법관은 “비상사태는 권한 탈취의 구실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