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훈련·AI 교사 등 무한한 사업 기회 열려
현실도피·정보오염 등 부작용 우려…"예방의 지혜 모아야"
현실도피·정보오염 등 부작용 우려…"예방의 지혜 모아야"

과거 잡스는 아이폰의 터치 조작을 "마법처럼 움직인다"고 자찬하며 사람과 컴퓨터의 거리를 좁혔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인간과 기술이 다른 차원에서 더 복잡하게 얽힐 전망이다.
차세대 단말기 유력 후보로는 AR(증강현실) 글라스나 MR(복합현실) 기기 등이 꼽힌다. 시장 규모는 2030년 9000만 대에 이르고, 2033년에는 전 세계 AR/VR 스마트글라스 시장이 536억 달러(약 73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세리드(Cellid)의 시라카미 켄 최고경영자(CEO)는 "착용 때 모든 공간이 화면이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목소리를 통한 상호작용 역시 핵심 기술이다. 일레븐랩스(ElevenLabs)의 마티 스타니스제프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이어폰 속에 자신만의 선생님을 둘 수 있다"며 개인화된 지도가 학습 몰입감을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 라면 맛 나는 소면…뇌를 속이는 '크로스모달'
차세대 기술의 핵심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간의 감각에 직접 개입하는 데 있다. 도쿄대 대학원의 나루미 다쿠지 준교수는 "인간의 오감은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나루미 준교수는 소면을 먹으면서 VR 고글로 라멘 영상을 보면 실제 라멘 맛을 느끼는 실험을 소개한다. 시각이 다른 감각을 덮어쓰는 '크로스모달 착각' 현상으로, 뇌가 강력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산업계는 이런 착각의 원리를 이미 현장에서 활용한다. 2019년 문을 연 이마크리에이트(imacreate)는 VR 경험을 뇌가 현실로 착각하는 현상을 응용해 기술 훈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회사 야마모토 아키히로 최고경영자(CEO)는 "VR에서의 성공 경험은 '나도 의외로 잘하네'라며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잠재력만큼 큰 그림자…'어텐션 이코노미' 심화
착각을 지렛대 삼아 새로운 경험과 편리함을 만들고 인간의 잠재력까지 끌어내는 접근은 일, 오락, 학습, 의료 등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열어준다.
하지만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정신 깊숙이 파고드는 만큼, 그 위험성 또한 크다. 한 버추얼 유튜버는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항상 선을 긋는다"며 "비방이나 중상을 당하면 실제 내 자신이 상처받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기술과 인간의 융합이 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미칠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다. 현실 도피, 중독, 정보 신뢰성 저하(가짜 정보 확산) 등 스마트폰 시대를 뛰어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사용자의 관심을 과도하게 빼앗는 '어텐션 이코노미(주의 경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폰의 창조자 조니 아이브조차 화면이 주는 중독성과 정보 과잉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가 '스마트폰의 다음'을 모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의 기술은 스마트폰 이상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넘어 모든 공간이 '체험의 장'으로 바뀌는 세상에서, 기술의 악용을 막을 '예방의 지혜'를 모으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