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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중)] 중동의 총성, 엇갈린 韓 산업계 명암…방산 '활짝', 정유·건설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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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중)] 중동의 총성, 엇갈린 韓 산업계 명암…방산 '활짝', 정유·건설 '휘청'

안보 불안이 키운 '역설적 기회'…K-방산, 빠른 납기·가격 경쟁력으로 중동 공략
유가·물류비 상승 직격탄… 정유·건설·제조업 등 주력 산업 전반에 '경고등'
방위산업이 중동 특수를 누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정유·화학 업계는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방위산업이 중동 특수를 누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정유·화학 업계는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로이터
중동에서 울리는 포성은 한국 산업계에 극명하게 엇갈린 신호로 다가온다. 방위산업계에는 전례 없는 성공 기회가 열린 반면, 원유에 생존을 의지하는 정유·화학 업계와 중동에 큰 사업장을 둔 건설·플랜트 업계에는 생존의 위기가 닥쳤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이 한국 기업들의 희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 위기가 기회로… 방산 수출길 '활짝'


중동의 안보 불안이 오히려 한국 방위산업에는 더없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란의 위협을 느끼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걸프 국가들이 국방력을 키우려 한국산 무기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동 전쟁 확전 우려가 커진 뒤 LIG넥스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KAI), 한화시스템 같은 주요 방산주 주가는 연일 오름세를 보였다.

중동 국가들이 한국 방위산업을 주목하는 까닭은 ▲빠른 납품 능력 ▲구매국 요구에 맞춘 유연한 제작 ▲미국·유럽산보다 높은 가격 경쟁력 등 3박자를 고루 갖춘 덕분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자국 무기 비축을 우선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 무기가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UAE와 사우디, 이라크는 12조 원이 넘는 '천궁-II'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도입 계약을 맺었으며, 수출 품목도 전투기, 잠수함, 자주포, 전차, 무인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물론 모든 기업이 울상인 것은 아니다. 국제 유가 급등은 일부 에너지 관련 기업에 짧은 기간 이익을 안겨준다. 한국석유, 흥구석유 등 석유와 에너지 관련 기업들은 원유 공급 불안정에 따른 가격 상승 덕분에 짧은 기간 매출과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전쟁이 길어지면 에너지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앞으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유가·물류 충격… 휘청이는 주력 산업


방위산업계의 환호 뒤에서는 한국 주력 산업의 신음이 터져 나온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정유·석유화학 업계다.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원가 부담과 정제마진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같은 석유화학 기업 역시 원료 조달에 직접 타격을 받고 있다.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했던 건설·플랜트 업계도 비상이다. 사우디의 '네옴 시티' 같은 대규모 사업을 수주한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등 국내 건설사들은 전쟁이 번지면 공사 지연이나 사업 중단 위기에 놓였다. 실제로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이를 만큼 높아,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수록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세계 공급망의 동맥인 해운업도 위기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운임과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물류 대란을 피할 수 없다. 이는 HMM 같은 국적선사는 물론, 중동 수출 비중이 높은 섬유·기계·장비 업체들의 비용 부담을 늘린다. 다만 흥아해운 등 일부 해운사는 급등한 해상 운임 덕분에 짧은 기간 수익성이 나아지기도 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기아 같은 제조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물류비 상승은 물론, 현지 법인의 안전 문제까지 불거졌다. 특히 완성차는 현지 판매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는 이스라엘 인텔 공장 가동에 문제가 생기면, 세계 중앙처리장치(CPU) 공급망이 흔들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반도체 기업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걱정한다. 중동의 위험은 이제 일부 업종에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한국 실물 경제 전반에는 비용 상승과 수출 차질 등 나쁜 영향이 더 큰 '현실의 위협'이 되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