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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지상에서 지하로…핵전쟁 대비하는 각국의 '최후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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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지상에서 지하로…핵전쟁 대비하는 각국의 '최후 보루'

이란 포르도 공습 계기로 수면 위로…미·중·러, 냉전 시대부터 경쟁적 구축
정밀타격 무기에도 생존 보장…미래전의 핵심 변수로 부상
'지하 펜타곤'으로 불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레이븐 록 산악 복합시설 위성 사진. 여러 개의 터널 입구와 지상 구조물이 보인다. 이곳은 비상시 미국 정부 기능을 유지하는 핵심 시설 중 하나다. 사진=구글 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하 펜타곤'으로 불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레이븐 록 산악 복합시설 위성 사진. 여러 개의 터널 입구와 지상 구조물이 보인다. 이곳은 비상시 미국 정부 기능을 유지하는 핵심 시설 중 하나다. 사진=구글 어스
이란의 포르도 핵시설은 지하 800m에 건설된 '철옹성'이다. 미군의 특수 벙커버스터로도 파괴를 장담하기 힘든 이곳이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으면서, 전 세계에 숨겨진 지하 군사기지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1일(현지시각) 강대국들이 핵심 자산을 보호하려고 구축한 '지하 요새'가 현대전의 새로운 격전장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베남 벤 탈레블루 선임 연구원은 "포르도는 이란 핵 활동의 전부"라고 평가했고,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이 시설이 약 3주 안에 핵폭탄 9개를 만들 수 있는 무기급 우라늄 생산 능력을 갖췄다고 추정했다.

이란은 최근 공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해는 제한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대니 시트리노위츠 분석가는 "미국의 도움 없이는 포르도 공략은 큰 도전"이라며 "매우 견고하고 산 깊숙이 있어 얼마나 피해를 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미·중·러, 경쟁하듯 지하 요새 구축


이런 지하 시설은 이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에 1만 곳이 넘는 지하 벙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주요 강대국들은 이미 냉전 시대부터 핵심 지휘 시설과 타격 시설을 지하에 만들어왔다.

미국은 '지하 펜타곤'이라는 별명의 펜실베이니아 레이븐 록 산악 복합시설을 비롯해 버지니아의 마운트 웨더, 콜로라도의 샤이엔 산을 잇는 지휘 체계를 갖췄다. 특히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본부가 있는 샤이엔 산은 3메가톤급 핵폭발에도 견디도록 설계했다.

러시아 역시 모스크바 지하의 주요 지휘소를 잇는 비밀 지하철 '메트로-2'와 우랄산맥의 야만타우 산에 거대한 핵무기 저장고나 지휘 시설을 운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카푸스틴 야르와 지트쿠르 지하기지 등은 옛 소련 시절부터 운영한 대표적인 비밀 군사시설이다.

중국은 하이난섬 룽포 해군기지 지하에 정교한 터널을 만들어 핵잠수함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남중국해로 바로 출항하는 능력을 갖췄다. 중국의 2차 핵 보복(세컨드 스트라이크) 능력의 핵심 거점이다. 최근에는 베이징 인근에서 미군의 벙커버스터나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신형 지하 군사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정황을 위성사진이 포착했다.

◇ 북한·이란, 핵 포기 않고 지하 확장 계속


북한 또한 일찍부터 지하 군사 시설 건설에 공을 들여왔다. 1989년 드러난 금창리 시설을 포함해 산악지형을 활용한 4,800곳 이상의 지하 군사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미사일 기지와 핵시설 등을 산속 깊이 숨겨 생존 가능성을 높였고, 비상시 평양 지하철 또한 방공호로 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란은 포르도에 그치지 않는다. 나탄즈 남쪽 '곡괭이 산'이라 부르는 지역에 포르도보다 더 깊고 거대한 새 지하 핵시설을 건설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란은 이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포르도 핵시설은 2009년 서방 정보당국이 그 존재를 폭로하면서 국제 제재를 불렀고,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체결의 핵심 배경이 됐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한 뒤 이란이 포르도를 다시 가동하며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자, 지하 핵시설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정밀유도무기와 EMP탄 같은 현대 무기의 위력이 강해져 지상 시설이 취약해지자, 각국은 생존을 보장하려고 지하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지하 요새는 핵전쟁 같은 최악의 경우에도 국가 지휘 통제 기능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미래전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