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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인텔의 결정적 오판…팻 겔싱어 前 CEO "AI 과소평가했다" 뒤늦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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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인텔의 결정적 오판…팻 겔싱어 前 CEO "AI 과소평가했다" 뒤늦은 고백

AI '추론'에만 매달리다 '학습' 시장 놓쳐…가우디·팔콘 쇼어스 연이은 실패
신임 CEO, 칩 아닌 '시스템'으로 승부수…'재규어 쇼어스'로 반격 채비
팻 겔싱어 전 인텔 CEO(사진)가 AI 시장의 파급력을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했다. 인텔은 '추론' 시장에 집중하다 '학습' 시장을 놓쳤고, 가우디와 팔콘 쇼어스 등 주요 프로젝트가 연이어 실패하며 경쟁에서 뒤처졌다. 립부 탄 신임 CEO는 칩이 아닌 시스템 중심의 '재규어 쇼어스' 프로젝트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팻 겔싱어 전 인텔 CEO(사진)가 AI 시장의 파급력을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했다. 인텔은 '추론' 시장에 집중하다 '학습' 시장을 놓쳤고, 가우디와 팔콘 쇼어스 등 주요 프로젝트가 연이어 실패하며 경쟁에서 뒤처졌다. 립부 탄 신임 CEO는 칩이 아닌 시스템 중심의 '재규어 쇼어스' 프로젝트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인텔이 인공지능(AI) 시장 흐름을 잘못 읽어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인텔의 팻 겔싱어 전 최고경영자(CEO)는 닛케이 아시아와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의 재임 시절 AI 파급력을 과소평가했다며 실책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 전략 실패 때문에 경쟁사 엔비디아가 AI 칩 시장을 독점했다.

인텔이 AI 분야, 특히 AI 가속기와 랙 스케일(rack-scale) 솔루션에서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내놓은 '가우디(Gaudi)' AI 가속기마저 클라우드 기업들의 채택률이 미미해, 가장 주목받는 AI 산업에서 인텔이 경쟁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닛케이 아시아는 겔싱어 전 CEO가 재임 시절 AI에 대한 회사의 접근법이 부진했음을 시인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겔싱어 전 CEO는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AI 칩의 연산 성능은 계속 향상됐지만, 전력 효율성은 3세대에 걸쳐 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추론이 전부"라던 오판…엔비디아 '쿠다' 아성만 키워줘

인텔의 전략 오판은 다른 경쟁사들이 모델 '학습(training)' 시장에 집중할 때 '추론(inference)'이 전부일 것이라 속단한 데서 명확히 드러난다. 당시 겔싱어 전 CEO는 추론 시장이 열리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고, 엔비디아의 독점 기술 쿠다(CUDA)를 '해자(moat)'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습 시장이 크게 성장했고, 엔비디아의 쿠다 생태계는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기대를 모은 차세대 AI 하이브리드 칩 '팔콘 쇼어스(Falcon Shores)'는 올해 초 취소됐고, 이제 내부 시험용 칩으로만 쓰인다. 경쟁사 엔비디아와 AMD가 관련 제품으로 지난 몇 분기 동안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사이, 인텔은 매출과 기술력 모두에서 뒤처져 시장에서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 칩 경쟁 대신 '랙 단위 시스템'으로…신임 CEO의 전략 전환

립부 탄 신임 CEO 체제는 '재규어 쇼어스(Jaguar Shores)' 프로젝트로 전략을 전면 바꾸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재규어 쇼어스'는 단일 칩으로 경쟁하는 대신, 서버·네트워크·메모리·실리콘 포토닉스 등을 아우르는 랙 단위 통합 AI 시스템을 개발해 데이터센터 시장의 새 표준을 세우려는 시도다. 특히 겔싱어 전 CEO가 재정 부담에도 고수했던 내부 반도체 생산 체제, 즉 'IDM 2.0'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신임 CEO는 비판받던 파운드리 사업보다 인텔 핵심 역량인 설계에 다시 집중할 전망이다.

나아가 GPU 경쟁에 바로 뛰어드는 대신, x86 CPU 같은 기존 인텔 제품에 AI 가속 기능을 넣어 하이브리드·모듈형 AI 컴퓨팅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펼칠 전망이다. AI 시장 대응 실패를 인정한 인텔이 큰 변화를 예고했지만,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잠재 매출과 시장 주도권을 놓친 만큼 벌어진 격차를 좁히려면 긴 시간과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