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주민 2명 중 1명이 인종차별이나 혐오 사건을 직접 겪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 관련 정책과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방침이나 출생시민권 폐지 시도 등 제도적 차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LA 지역 공영언론 LA이스트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인종차별 반대 시민단체 ‘스탑 아시아계 혐오’와 시카고대 여론조사센터가 공동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캘리포니아 아시아계·태평양계 성인 응답자의 48%가 2024년 한 해 동안 인종적 위협이나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도 조사 결과인 49%와 유사한 수준이다.
응답자 중 일부는 “식당에서 ‘추방될 예정이니 마지막 식사 잘 하라’는 말을 들었다”거나 “놀이터에서 ‘총이나 폭탄 있냐’는 말을 듣고 위협당했다”고 증언했다. 스탑 아시아계 혐오의 만주샤 쿨카르니 공동창립자는 “반(反)아시아 정서가 지속되고 있으며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제도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출생시민권 폐지 시도…ICE 단속도 인종 편향 지적 받아
쿨카르니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생시민권 철회 시도는 100년 넘게 유지돼온 헌법적 보호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에 특히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 자녀들의 시민권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로스앤젤레스 연방판사가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이 “인종과 언어, 근무지 등을 근거로 한 무차별 표적”이라고 판결한 점도 언급됐다. 특히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이 지난 5월 발표한 중국 유학생 비자 회수 방침 이후 로스앤젤레스 지역 중국인 유학생들은 “미국에서의 거주가 더 불안해졌다”고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쿨카르니는 “특히 로스앤젤레스에서 중국인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앞으로 훨씬 더 불안정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신고율은 여전히 낮아
이번 조사에서는 인종차별을 경험한 응답자의 40%가 정신적 또는 신체적 건강 문제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스트레스, 불면, 불안, 우울뿐 아니라 일상 활동을 피하거나 장소를 바꾸는 회피 행동도 보고됐다.
그러나 신고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밝힌 응답자 중 72%는 경찰 등 공권력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신고하더라도 정식 보고서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한 베트남계 여성은 자신의 집 우편함 앞에서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한 뒤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신고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위치를 알리는 셈이 될 수 있다”며 접수를 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혐오 대응 예산 늘렸지만 실효성은 숙제
스탑 아시아계 혐오 측은 2020년 설립 이후 수천 건의 인종차별 사건을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입법 활동과 인식 개선에 나서왔다. 2021년에는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아시아·태평양계 형평성 예산’을 통과시켜 약 2억500만달러(약 2825억원)를 혐오 대응 프로그램에 배정했다. 여기에는 방관자 개입 교육, 커뮤니티 예술, 정신건강 서비스 등이 포함됐다.
쿨카르니는 “그동안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아시아계 주민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면서도 “제도적 보호와 지역 사회의 실질적 연대가 더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