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지표 과열, 과거 자산 거품 시기 수준...전문가들 "AI 기업 투자 유의해야"

미국 증시의 벤치마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이달 들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는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 여파로 주가가 급락했던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국의 수입 관세를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고착시키는 무역협정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과열 신호는 오히려 더 뚜렷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 핌코(PIMCO)의 댄 이바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금 상황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닷컴 붐 당시의 초기 징후들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다”면서 “일종의 ‘복권 심리’가 시장 전반에 퍼지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조합”이라고 경고했다.
바클레이스 “주식시장 지표 과열, 평소의 두 배…과거 자산 거품 수준”
FT에 따르면 바클레이스의 ‘주식시장 낙관 지표(equity euphoria indicator)’는 현재 평상시의 두 배 수준으로 치솟으며, 과거 자산 거품 시기에 나타났던 경고 구간에 진입했다. 이 지표는 파생상품 흐름, 변동성, 투자자 심리를 종합한 것이다.
바클레이스의 스테파노 파스칼레 미국 주식 파생전략 책임자는 “지표가 시장이 명백히 과열됐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최근 미국과 일본 간 무역협상 타결 소식에 안도감을 표출했다. 양국은 일본산 수입품에 대해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고,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에도 유사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관세율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 수준보다는 훨씬 높지만, 트럼프가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선언 당시 경고했던 극단적 관세보다는 완화된 수준이다.
픽테 자산운용의 루카 파올리니 수석 전략가는 “이번 관세 합의들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시장은 전면적인 무역전쟁만 아니면 만족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국채와 달러는 과도한 재정지출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훼손 우려로 하락세지만, 주식시장은 이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달러는 올해 들어 주요 통화 대비 약 10% 하락했다.
지난 4월까지의 하락장 이후 반등을 주도한 것은 엔비디아, 메타 등 대형 기술주였다. 이들 종목은 4월의 저점 대비 각각 100%, 50% 상승했다.
자산운용사 리서치 어필리에이츠(Research Affiliates)의 창립자 롭 아노트는 “S&P500 지수 내 주가매출비율(P/S), 주가현금흐름비율(P/CF), 주가순자산비율(P/B), 주가배당비율(P/D) 모두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면서 “지금 주요 인공지능(AI)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증기 롤러 앞에서 동전을 줍는 행위와 같다”며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시장은 현재 AI 선도 기업들이 앞으로도 경쟁자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로 가격을 매기고 있다”면서 “한편으로는 이처럼 인기 있고 과열된 종목에서 벗어나기엔 너무 이르다는 경계심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중소형주 랠리 "예사롭지 않아..."
FT는 최근 미국 증시에서 일부 중소형 종목들이 대형 기술주 못지않은 강세를 보이는 점에도 주목했다.
방위산업체 팔란티어는 미국 정부와의 강력한 계약 기반 매출 덕분에 4월 저점 대비 주가가 140% 급등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이후 촉발된 디지털 자산 산업에 대한 낙관론을 타고 무려 180% 가까이 폭등했다.
비트코인 가격도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12만 달러를 돌파했다. 기업과 기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를 점점 더 금융시장의 주류 자산으로 받아들이며 매수에 나서 가격 급등을 견인했다.
낙관론은 기업 신용시장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미국 기업이 국채 대비 추가로 부담하는 금리 스프레드는 0.8%포인트로 줄어들며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18일 투자자 노트를 통해 “주식 매입을 위한 차입 증가가 1999년과 2007년과 비견될 만한 과열 현상의 징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시기는 각각 닷컴버블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