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3분의 1 가격 제안했지만…미 안보·법률 등 '현실의 벽'
완제품 수입 대신 기술 동맹으로…한미 조선업 협력, 새 국면으로
완제품 수입 대신 기술 동맹으로…한미 조선업 협력, 새 국면으로

중국 해군에 양적으로 뒤처진 미 해군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미 해군의 존 필런 장관은 "우리가 여전히 지배적인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적들이 빠르게 격차를 좁히고 있다"며 "경쟁 우위를 지키려면 중요한 문화,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고 위기라고 인정했다. 이런 배경에서 랜드(RAND) 연구소가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해양 지배력을 되살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산업 동맹"이라고 지목하면서 한국 조선업의 역할이 부상했다.
특히 필런 장관이 지난 4월 한국 조선소를 둘러본 뒤 남긴 소감은 이러한 기대에 불을 지폈다. 그는 한국의 최신 이지스함을 두고 "우리 것보다 약 10% 더 크고, 솔직히 전투정보실(CIC) 배치는 더 훌륭했다"며 "그들은 그 배를 3년 만에 3분의 1 비용으로 건조할 수 있다"고 극찬했다. 그는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며 한국 조선소 활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 값싼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유혹…그 이면의 6가지 위험
하지만 이처럼 달콤한 제안을 미국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은 명확하다. 모두 여섯 가지 핵심 반대 논리가 있다.
첫째, 군함의 핵심 가치인 '생존성' 문제다. 미 해군 구축함은 선체 강도, 전투 체계, 내진 설계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높은 기준을 채워야 하며, 신형 함정마다 실탄 충격 시험을 의무적으로 치른다. 수많은 실전 경험이 낳은 산물이다. 2000년 피격된 USS 콜함이 침몰을 면한 것도 충격 강화 처리를 한 손상 통제 체계 덕분이었다. 한국 같은 외국 조선소가 이러한 미 해군의 엄격한 기준을 틀림없이 지키면서 원하는 비용과 일정을 맞출 수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둘째, 건조 기간과 조건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해마다 5척의 구축함을 건조하려면 한국 조선소는 상선 부문 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신규 인력을 뽑는 등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 조선소의 실제 구축함 인도 시기는 미국과 비슷하며, 한국산 구축함은 완전한 전투 체계를 싣고 인도하지 않는다. 단순히 건조 속도나 비용만으로 비교하면 "동등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셋째, '경제 위험'이다. 세계 상선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독주 체제로 굳어졌다. 지난해 기준 세계 상선 건조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70%, 한국이 16%, 일본이 5%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이러한 불안정한 세계 시장은 군함 건조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잠재 위험 요소다. 조선업계의 인력 문제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넷째, '중국의 감시'라는 지정학상의 위험이다. 지난해 부산항에 머무르던 미군 항공모함을 중국인이 무인기(드론)로 촬영하다 적발된 실제 사례는 상징적이다.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이지스함을 잠재적 적국의 감시망 바로 앞에서 건조하는 것은 추가적인 보안, 정보 유출 위험을 안고 있다.
다섯째, '의회의 반대'라는 현실의 장벽이다. 군함의 해외 건조는 미 의회의 승인이 필수지만, '번스-톨레프슨 법안(Byrnes-Tollefson Act)' 같은 관련법이 미 해군 전투함의 외국 건조를 막고 있다. 관련법 조항이 사실상 넘기 힘든 장애물인 셈이다.
◇ '완제품 구매' 아닌 '기술 동맹'…새로운 협력 모델 부상
여섯째, 대안으로 '국내 투자와 동맹 협력'이라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 미 의회예산처(CBO)의 에릭 랩스 박사는 "미국이 중국과의 오랜 군비 경쟁에서 혼자 이길 수 없으며, 동맹의 산업 역량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화그룹의 필리(Philly) 조선소 인수, HD현대중공업과 미국 조선소 HII, 또 방산업체 페어뱅크스 모스 간의 기술 협력, 한화오션의 미 해군 지원함 정비 수주 등은 군함 완제품 수입이 아닌 기술 이전, 생산성 혁신, 정비 협력을 넓히는 쪽이 더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미 해군 함정 건조 문제의 근본 해법은 미국 본토 안의 조선산업 투자와 동맹국과의 기술, 생산 협력 강화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맹 간 협력을 넓혀야 하지만, 구축함 전체를 해외에서 건조하는 빠른 해법에는 여러 한계와 위험이 뚜렷하게 있다. 워싱턴이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용골은 미국 조선소에 거치해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