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기업들 40년 이상 된 원자로 전력 확보 나서…전기료 상승과 전력망 안전 우려도 커져

보도에 따르면, 미국 내 54개 원전 중 약 22곳이 비규제 시장에서 전력을 판매하는데, 이들이 이번 기술 기업 전력 공급 경쟁의 주요 무대다. 비규제 시장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정부가 가격과 공급 방식 등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고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경쟁을 통해 거래하는 것으로 미국의 경우, 전체 전력시장 중 약 60%가 이렇게 운영된다.
■ AI 전력 수요 급증, 20년 단위 계약으로 노후 원전 전력 확보
AI 기술 발전에 따라 정보처리량이 크게 늘면서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이 폭증했다. 이를 감당하는 노후 원자력 발전소가 기술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메타는 일리노이주의 대형 원자로와 20년 단위 계약을 맺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1979년 멜트다운 사고로 운영을 중단했던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아일랜드’ 발전소 인근 원자로 재가동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도 42년된 펜실베이니아 원전에서 전력을 확보했다.
■ 노후 원전 ‘부활’ 기대에 소비자 부담·전력망 불안 우려 커져
하지만 일부 소비자 단체와 규제 당국은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망 불안 문제를 경계한다. 환경단체인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잭슨 모리스 이사는 “기업들이 무탄소 전력을 확보하는 데만 신경 쓰고, 소비자 비용과 전력망에 미칠 영향은 외면한다”고 말했다.
대형 원전에서 데이터센터로 전력 공급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기존에 해당 발전소 전기를 쓰던 일반 가정과 사업장 전력 공급이 줄어들 위험도 커진다. 이에 메릴랜드 주 일부 국회의원은 전력의 약 40%를 생산하는 ‘캘버트 클리프’ 원전 인근 데이터센터 신설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주 전력위원회 보고서도 “원전 전력을 데이터센터로 돌리면 전력망 안전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데이터센터가 원전에서 전력을 직접 받아가면 전력망 사용료를 내지 않아 다른 소비자가 그만큼 더 부담하게 될 수 있다. 아마존은 펜실베이니아 거래에서 이러한 우려로 규제 당국에 반려를 당해 계약을 다시 조정하기도 했다.
■ “노후 원전은 임시방편, 대규모 신규 원전 건설 필요” 전문가 조언
원자력 업계는 이번 기술 기업의 대규모 계약을 원자력 부활 신호로 보고 있다. 뉴저지 전력사 PSEG 역시 기술기업과 대형 원전 전력 계약을 협의 중이며, 텍사스 전력회사 비스트라도 관련 논의를 펼친다. 컨스텔레이션 에너지 수석 부사장 댄 에거스는 “더 많은 대규모 계약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에너지 연구기관 브레이크스루 인스티튜트 공동 설립자 테드 노드하우스는 “새 기술으로 구식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고, 당분간은 기존 원자로에서 최대 전력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소 시장 정책 담당자 벤튼 아넷도 “장기적으로는 신규 원전 건설이 탄소 배출 줄이고 전력 안정 위해 필수”라며 현재의 장기 계약은 단기 대책일 뿐이라고 했다.
기술 기업들도 차세대 소형모듈 원자로와 핵융합 에너지에 투자하고 있으나, 엔지니어링·공급망 문제와 규제 장벽 탓에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 노후 폐쇄 원전 재가동 추진과 장기 계약 확산
기술 기업은 시동이 끊긴 원전 재가동에도 관심을 둔다. 2017년 비용 초과와 설계 문제로 중단된 사우스캐롤라이나 ‘V.C. 썸머’ 원전 건설 현장과 2020년 폭풍 피해로 가동 중단된 아이오와 ‘듀언 아놀드 에너지 센터’ 사례가 대표적이다. 듀언 아놀드는 지역 전력망에 필요한 전력량 확보 목적으로 일부 기업과 재가동 협의를 진행 중이다.
골드만삭스 유틸리티 분석가 칼리 대번포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전력에 기꺼이 더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면, 장기 계약이 경제적으로 타당한 선택”이라며 현재 공개 시장가의 두 배 가격에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원전 업체들은 원자로 출력 높이기로 기존 원전 발전량을 신규 대형 원전 3기 분량만큼 늘리겠다고 계획 중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