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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운하 되찾기' 선언에 파나마 150년 中 공동체 와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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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운하 되찾기' 선언에 파나마 150년 中 공동체 와해 위기

기념비 철거·일대일로 탈퇴·화웨이 해체…5만 중국계 "조상 흔적 지워져"
미중 사이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갈등 속에 파나마 운하.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중 사이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갈등 속에 파나마 운하. 사진=로이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 되찾기를 선언하자 파나마가 중국에서 등을 돌리면서 중앙아메리카 최대 중국인 마을이 와해될 위기에 몰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9(현지시각) 파나마 자국 내 중국인 기념물 철거 논란을 중심으로 파나마 현지 중국인 마을이 겪는 상황을 심층 보도했다.

20년 된 중국인 기념비, 망가진 채 버려져 철거 위험


보도에 따르면, 파나마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아라이한 지역 미라도르 데 라스 아메리카스 공원에 2004년 세워진 중국인 기념비가 망가진 채 버려지면서 철거 논란이 일고 있다. 파나마 중국협회가 중국인 마을 150돌을 기념해 세운 이 기념물은 돌사자와 용을 새긴 빨간 아치와 오벨리스크로 이뤄져 있다.

카를로스 응 파나마 중국협회 부회장은 최근 현장을 둘러본 뒤 "이렇게 나쁜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프다""사람들은 그것을 버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념물을 쓸 수 있는 20년 계약이 2024년 끝난 뒤 중국협회는 고치고 손볼 돈을 모았지만, 스테파니 페냐바 아라이한 시장은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냐바 시장은 지난달 말 인스타그램에 아치와 오벨리스크가 없는 공원 그림을 올리며 "문화, 관광, 경제와 사업을 키우려고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협회가 보낸 우려 서한에도 답하지 않고 있다고 응 부회장은 전했다.

◇ 미국 밀어붙이기에 파나마, 일대일로 탈퇴 및 중국 기업 쫓아내


미국 컨테이너 운송의 40%가 지나는 파나마 운하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다투면서 파나마는 친미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굴린다. 우리가 그것을 중국에 준 게 아니다. 되찾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파나마는 2017년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과 손을 잡았으며, 같은 해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일대일로에 들어갔다. 중국 기업은 운하를 가로지르는 네 번째 다리를 짓는 14억 달러(19000억 원) 계약을 따냈고, 두 나라 무역은 크게 늘었다. 지금 중국은 파나마가 가장 많이 파는 나라이고 미국만이 중국보다 파나마에 더 많은 물건을 판다.

하지만 파나마 정부는 중국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지난 2월 파나마를 찾아 중국의 운하에 대한 영향력을 줄이기를 요구한 다음날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일대일로 탈퇴를 발표했다. 미국은 또 화웨이 통신탑 뜯어내기에 800만 달러(111억 원)를 도와주기로 했다.

파나마 감사원은 지난달 말 홍콩에 본사를 둔 CK 허치슨이 운영하는 파나마 항구에서 "많은 잘못"을 찾아냈다며 계약 파기 소송을 냈다. 이 회사는 운하 양쪽 끝 항구 2곳을 운영하고 있다.

물리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파나마의 "최고 전략과 여러 분야 동반자"라고 부르며 "우리는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장사, 안전, 관광과 국가 동반자는 미국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 피와 땀으로 세운 150년 터전, "정치와 문화 분리" 주장


지금 파나마 사람의 5~10%에 이르는 중국계는 1850년대 운하 짓기 일꾼으로 처음 왔다. 첫 이민자들은 1850년대 철도를 짓고 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만들려는 초기 시도에서 일꾼으로 왔다. 미국이 프랑스한테서 운하 일을 넘겨받았을 때 중국인들은 파는 현장 근처에서 가게를 열며 자리잡았다.

이 장사꾼들은 중국에서 가족을 불러왔고, 다음 세기에 걸쳐 사람 수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중국인 마을로 자랐다고 역사가 베르타 알리시아 첸은 말했다. 1914년 운하가 끝날 때까지 33년 공사에서 흙이 무너지거나 전염병으로 약 27500명 일꾼이 죽었다.

파나마시티 조약돌 옛 동네에는 차이나타운인 바리오 치노가 생겼다. 딤섬은 "중국식 아침밥보다 더 파나마식 아침밥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자리잡았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 가운데 중국계 파나마인들은 걱정을 나타내고 있다. 4년 전 이곳에 온 귀화 시민 엘로이 총 라 초레라 시장은 "파나마가 중국에서 돌아서는 것은 벌써 경제적 손해를 가져왔다""내가 파인애플 농장 짓기를 부탁하던 중국 회사는 브라질로 계획을 바꿨다"고 말했다.

옛 운하 직원 후안 탐씨는 "전망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파나마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 세상에 보여준다""우리 중국계에게는 병을 고칠 약이 필요한데, 시 정부도 나라 정부도 이 문제 해결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중국계 파나마 국회의원 팻시 리는 "파나마가 미국과 중국 모두와 관계를 발전적으로 관리해야 하며, 트럼프를 의식해 중국인 마을을 버리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 부회장도 정치적 갈등과 문화적 뿌리는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쉬쉐위안 중국 대사는 최근 중국과 파나마가 손잡은 지 8년을 기념하는 만찬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 그는 "중국이 파나마에 이바지한 공로에 찬사"를 보내며 "중국을 파나마에서 뜯어내거나 옮기려는 어떤 시도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