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선도국 '산업화 속도전' vs 후발국 '환경 명분 지연' 팽팽
통일 규범 무산 시, 각국 독자 채굴…해저 무법지대 우려 커져
통일 규범 무산 시, 각국 독자 채굴…해저 무법지대 우려 커져

표면적으로는 심해 생태계 보호를 둘러싼 환경 논쟁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 자원의 보고(寶庫)를 선점하려는 기술 강국과 후발 주자 간의 패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업계 전문매체 글로벌 마이닝 리뷰는 13일(현지시각) 컨설팅 기업 아서 디 리틀의 보고서를 인용해, 논쟁의 본질이 지정학적 경쟁과 기술 격차에 있다고 지적했다.
협상의 핵심은 배터리와 첨단 전자제품 같은 미래 산업의 필수 원료인 '다금속 망간단괴'(코발트, 니켈, 망간 등 포함)의 상업적 채굴을 규제하는 국제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채굴 규정은 공해에서 이뤄지는 상업 활동의 환경 보호와 경제성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합의점 도출은 요원하다.
◇ '속도전' 선도국 vs '지연전' 후발국…동상이몽
가장 큰 쟁점은 심해 생태계 보호 문제다. 과학계는 채굴이 해양 환경에 미칠 장기 영향을 평가할 데이터가 절대 부족하다고 거듭 경고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재까지 확보한 극소수의 과학 데이터마저 채굴에 가장 적극적인 탐사 기업들이 과학자들을 탐사선에 태우고 물류와 기술을 지원하며 얻어냈다. 나아가 현재 논의가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참여를 배제하고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정학 긴장감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올해 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영해는 물론 공해에서도 심해 채굴을 지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경쟁에 불을 붙였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 한국 같은 기술 선도국들은 이미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탐사와 시험 채굴을 진행하며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단순 탐사를 넘어, 채취한 망간단괴에서 핵심 광물을 추출하는 고도의 제련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환경보다 산업 우위'라는 기조 아래 채굴과 상업화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반면 영국, 멕시코, 페루, 뉴질랜드 등은 채굴 규정 자체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 대부분이 탐사 기술, 심해 접근성, 관련 투자 등에서 선도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는 점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반대가 환경 보호라는 명분 뒤에, 기술·지리 약점을 보완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크다고 분석한다. 규정 제정을 늦춰 불리한 기술·주권 경쟁 구도를 바꾸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통일 규범 무산 땐 '자원 무법지대' 전락 우려
만약 글로벌 채굴 규정 제정이 최종 실패한다면, 규제 파편화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선도국들이 독자적인 국가별 규제 체계를 도입해 일방적 채굴에 나설 경우, 심해는 국제 통일 규제 없이 국가마다 벌이는 누더기식 경쟁의 장이자 지정학 충돌의 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심해 채굴의 세계는 단순한 환경 갈등을 넘어, 기술 주도권과 국제 영향력이 걸린 격전장이 됐다. 책임감 있고 투명하며 환경적으로 건전한 국제 규범을 확립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과제를 넘어선다. 질서 있는 규제를 만들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자메이카에서 내려질 결정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의 세계 권력 지형까지 뒤흔들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