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중가 시장 집중 공략…혁신 앞세운 韓 TV, 대중성 경쟁서 '고전'
소비자, '명품'보다 '실속' 선택…가격 경쟁력 앞세운 중국의 거센 추격
소비자, '명품'보다 '실속' 선택…가격 경쟁력 앞세운 중국의 거센 추격

TCL은 1980년대 중국의 작은 전자회사로 출발했다. 초기에는 저가 제품 생산에 머물며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10년대 들어 연구개발과 세계 시장 공략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단순한 저가 브랜드를 넘어 혁신 기술과 디자인 경쟁력을 확보한 TCL은 201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삼성·LG와 견줄 만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 '실속 있는 혁신'…성공 비결은
TCL 성공의 핵심 비결은 '실속 있는 혁신'이다. 삼성과 LG가 OLED, QLED 등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지만 높은 가격은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TCL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들었다. 미니LED(MiniLED) 기술을 발 빠르게 도입하고 4K HDR, 돌비 비전(DolbyVision) 등 고급 기능을 탑재하면서도 가격은 중간대를 유지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2000달러짜리 삼성 OLED TV와 900달러짜리 TCL 미니LED TV의 화질 차이가 1100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불할 만큼 크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TCL 제품을 실속 있는 선택지로 여기기 시작했다.
마케팅 전략도 차별화했다. 첨단 기능을 앞세워 기술 애호가를 공략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TCL은 일반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경제성과 실용성, 일상에 스며드는 편리함을 강조했다. 스마트 TV를 처음 구매하는 일반 가정에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전략이다. 여기에 중국 기업으로서 갖는 저렴한 제조 비용과 거대한 생산 능력은 TCL의 가격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기반으로 작용했다.
◇ 흔들리는 韓 TV 아성…소비자는 '가성비'로
TCL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삼성과 LG는 적잖은 압박을 받고 있다. 두 기업은 여전히 고급 시장의 절대 강자이지만, TCL은 중간 가격대의 방대한 대중 소비자를 공략하며 보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TCL은 미국 시장에서 일부 LG를 앞서며 판매 순위 상위권에 올랐으며,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삼성과 LG는 기술 혁신을 이어가면서도, 대중적 인지도와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TCL에 밀리는 모양새다.
이러한 현상은 소비자의 가치 기준 변화와 맞물려 있다. 과거 삼성·LG TV 구매가 일종의 '사치품' 소유를 인증하는 역할이었다면, 최근 인플레이션과 소비 행태 변화 속에서 '실속 소비'가 늘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비슷한 기능을 가진 TV를 굳이 두 배 가격에 살 필요가 있는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이는 높은 가격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삼성과 LG에게 큰 도전 과제다.
앞으로 TV 시장의 경쟁 구도는 더욱 명확해질 전망이다. 삼성과 LG는 고급 시장에 집중하며 폴더블 화면, 투명 디스플레이, 인공지능(AI) 기반 화질 개선 등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로 선두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중성을 넓히는 데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반면 TCL은 현재의 중저가 고급 시장을 이끌며 OLED 등 고급 제품군으로 제품을 확대하고, 스마트홈 기기와의 연계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TCL의 성공 사례는 TV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 세계 기업 환경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고객 중심의 전략과 시의적절한 혁신이 결합하면, 후발 주자도 언제든 시장의 거인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시장의 성공은 소비자가 결정하며, 현재 소비자의 저울추는 TCL 쪽으로 기울고 있다. 거인의 약점이 후발 주자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사례다. TCL은 바로 그 기회를 세계적인 성공으로 만들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