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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세계 반도체 장비 10대 기업, AI·중국 변수에 '극과 극'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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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세계 반도체 장비 10대 기업, AI·중국 변수에 '극과 극' 실적

램리서치·어드반테스트 등 AI 수혜 기업, 순익 70~280% 급증
중국 선수요 효과 소멸…의존도 높은 기업은 실적 직격탄
도쿄일렉트론의 반도체 제조 장치. 사진=도쿄일렉트론이미지 확대보기
도쿄일렉트론의 반도체 제조 장치. 사진=도쿄일렉트론
한결같던 세계 반도체 제조 장비 시장에 균열이 생겼다. 전체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절반은 이익이 줄거나 성장세가 꺾이는 뚜렷한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고 닛케이가 1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특수와 중국 시장 동향이라는 두 가지 변수가 기업들의 희비를 가른 핵심 요인이었다. 기업마다 성과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일본·미국·유럽의 10대 반도체 장비 기업이 2025년 2분기(4~6월, 일부 5~7월) 거둔 순이익 합계는 94억 달러(약 13조114억 원)로, 전년 동기보다 40% 늘며 5분기 연속 성장했다. 데이터센터 등에 투입되는 고성능 AI 반도체용 최첨단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성장을 주도했다.

미국 램리서치는 AI의 고속 데이터 처리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최첨단 로직 반도체용 식각·성막 장비 판매 호조 덕분에 순이익이 70% 급증했다. 반도체 검사·계측 장비 강자인 KLA 역시 '첨단 패키징'(칩렛, CoWoS 등) 부문 성장에 힘입어 40%의 높은 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일본 어드반테스트는 AI 그래픽처리장치(GPU) 테스트 장비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확대하며 순이익이 280%(3.8배)나 폭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 AI 특수 올라탄 기업 '고공 행진'


하지만 개별 기업 실적을 보면 그림은 완전히 달라진다. 도쿄일렉트론과 SCREEN 홀딩스는 순이익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들 기업은 불과 지난해만 해도 50~90%대의 높은 이익 성장을 구가하던 곳이다. 이익 감소 기업 수는 모두 5개사로, 2024년 1분기 이후 5개 분기 만에 가장 많았다. 성장세가 둔화된 곳도 있다. 디스코의 이익 증가율은 전년 동기 87%에서 0.2%로 급락했고,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역시 9%에서 4%로 성장폭이 줄었다. 미국 테러다인은 엔비디아 GPU 특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어드반테스트에 시장 점유율을 상당 부분 내주었고, 순이익이 60%나 급감했다.

이러한 부진의 첫 번째 원인은 중국 시장 침체다. 과거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 규제를 피하려고 선수요(buy-ahead demand)에 나섰고, 이는 장비업계에 때아닌 특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말라버린 중국 특수' 효과가 끝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2분기 9개 주요 기업의 중국 매출 합계는 93억 달러(약 12조8712억 원)로 5% 줄었으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한때 40%에 육박했으나 최근 30%까지 떨어졌다.

도쿄일렉트론의 가와모토 히로시 상무 집행 임원은 "중국의 신흥 레거시(구형)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예상보다 위축되고 있다"고 밝혔다. 스크린의 고토 마사토 사장은 "메모리,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현지 공급사들의 경쟁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기술 격차는 점차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 장비업체 육성을 가속화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 '말라버린 중국 특수'…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


앞으로의 전망도 불확실성이 크다. AI 수요에 힘입어 대부분의 서구권 기업과 일본 4개사가 3분기 매출 증가를 예상하지만 PC와 스마트폰의 더딘 회복세, 전기차(EV) 판매 부진에 따른 차량용 반도체 수요 약세도 걸림돌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관세와 수출통제 강화 가능성, 인텔 등 일부 반도체 제조사의 설비투자(CapEx) 축소 검토 움직임은 부담을 더한다.

투자 자금은 어드반테스트·램리서치 같은 AI 특수 수혜주로 쏠리고, 도쿄일렉트론이나 네덜란드의 ASML 등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만 ASML은 극자외선(EUV) 장비의 독점적 지위 덕분에 중장기적으로 강세가 예상된다. 퀵(QUICK)·팩트셋에 따르면 10대 장비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은 약 9100억 달러(약 1259조4400억 원)로, 지난 7월 고점보다 20% 낮은 수준이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의 미나미카와 아키라 연구원은 "PC·스마트폰 등 소비자 가전과 전기차 시장 부진으로 관련 반도체 수요 둔화가 예상된다"면서 "2027년까지 AI가 시장을 이끌며 장비업계의 '승자독식' 구조는 더욱 굳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GPU, HBM 관련 후공정 공급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반면에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나 전통 메모리와 성숙 공정 장비 기업은 구조적 위험에 놓일 가능성이 커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