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와 '매출 15% 납부' 합의…성능 낮춘 '블랙웰' 기반 칩으로 中 시장 공략
美 규제, 中 반도체 자립 가속화 '부메랑' 우려…화웨이 등 자국산 칩으로 엔비디아 추격
美 규제, 中 반도체 자립 가속화 '부메랑' 우려…화웨이 등 자국산 칩으로 엔비디아 추격

19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가 현재 중국에 판매 중인 H20 칩보다 성능이 뛰어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칭 'B30A'로 이름 붙은 이 칩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블랙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며, 이르면 다음 달 중국 고객사들에 테스트용 샘플 공급을 목표로 한다. 해당 칩은 현재 중국에서 판매 중인 H20보다 성능이 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 정부의 규제에 맞춰 성능이 일부 제한된(downgraded) 버전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엔비디아는 CNBC에 보낸 공식 성명에서 "우리는 로드맵을 위해 다양한 제품을 평가해 정부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원론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어 "우리가 제공하는 모든 것은 관계 당국의 완전한 승인을 받았고, 오직 유익한 상업적 용도로만 설계되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검토 중'이라는 표현이, 최종 출시는 미국 정부의 승인에 달렸다는 점을 분명히 해 정치적 위험 부담을 줄이려는 전략적 발언이라고 해석한다.
◇ 美 정부와 극적 합의…새 칩 개발의 배경
엔비디아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미국 정부와의 합의 직후에 나와 더욱 눈길을 끈다. 엔비디아는 이달 초 경쟁사 AMD와 함께, 중국 내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내는 조건으로 반도체 판매 재개를 허가받았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첨단 컴퓨터 칩의 중국 판매를 전면 중단시킨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도 2023년 AI 칩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H100, A100 같은 고성능 GPU 수출이 제한되자, 엔비디아는 규제를 피해 중국 시장 전용 저사양 칩인 H20를, AMD는 MI308을 개발해 판매해왔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H20은 성능이 지나치게 낮아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주요 정보기술 고객사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엔비디아와의 협상 뒷이야기를 공개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당초 매출의 20%를 요구했으나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와 협상해 15%로 낮췄다고 밝히며, 성능을 대폭 낮춘 블랙웰 칩의 중국 판매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능을 30%에서 50% 정도 낮추는 것이라면 거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접근은 중국의 AI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면서도 미국 기업의 세계 매출은 보장해주려는 타협책으로 볼 수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역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중국에 새로운 칩을 팔고 싶어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가 항상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대통령은 우리의 위대한 기술 기업들 의견에 귀를 기울여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中 기술자립 가속화 '부메랑'…장기적 위협 직면
한편, 중국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엔비디아 주가에도 즉각 나타났다. 보도 직후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3% 넘게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미국의 강력한 규제는 역설적으로 중국 내 AI 반도체 자급화 속도를 높이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어센드 910B' 같은 AI 칩으로 엔비디아의 빈자리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중국 기업들로서는 미국산 칩에 의존하면 지속적인 제재 위험을 떠안는 만큼, 장기적으로 엔비디아 칩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산 GPU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 B30A 개발 검토는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승인이라는 핵심 변수와 중국 고객의 수요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H20의 전례처럼 성능이 지나치게 약화되면 중국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고, 반대로 성능이 높으면 미국의 안보 논리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매출 확보에 성공할 수 있겠지만, 미국의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해 세계 최대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